▲그리스도는 오늘 이른 새벽 부활하셨다. 우리 스스로가 자초(自招)한 죽음, 곧 파멸을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으로 극복하고 다시 살아났고 우리를 영생으로 보양케 하셨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가? ▲죽음은 종말이다. 죽음은 허무다. 온갖 인간은 만능을 자처하면서 오늘 인생의 종말과 허무를 탈피하려 생명을 건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의 회답은 이미 인간 창조의 찰라에, 그 이전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2천년전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버의 모친 마리아와 및 살로메』가 무덤에서 온 인류를 대표해서 보고 들었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 순간도 인간은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 도로(徒勞)를, 낭비를. 죽음은 허무라고. ▲『알렐루야, 알렐루야. 우리 「바스카」 고양(羔羊)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고…(우리와 함께) 부활하셨도다.』 그리스도는 이 부활을 위해 무엇을 치르셨는가? 지난 40일동안 듣고 묵상한 것이다. 사랑을 위해 생명을 제물로 바쳤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고 순전히 인간을 위해서다. 이 일은 2천년전의 일이다. ▲그러나 인간인 우리는 나는 배은망덕으로 이를 갚았다. 지난 2천년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교만과 시기, 질투와 인색, 탐욕과 미색(迷色), 해태와 탐도(貪도)와 위선으로. 배은망덕한 자는 갈려진 형제도, 비그리스도교 신자도, 비신자도, 무신론자도 아닌 바로 천주의 백성인 「나」가 아닌가? ▲그리스도 부활하시면서 「나」를 부활의 대열에 초대코자 하신다. 고통과 편태를 받고 능욕과 자관을 쓰고 수치와 못(針)을 받으며 희생하사 오늘 우리에게 준, 사랑의 선물이다. 이 아침 우리에게 권위나 위선이 무슨 소용인가? 주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다. 그런데도(현대) 인간은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우리에게 도전해 오고 있다. ▲우리는 신을 두번 죽음을 하게 하지 않는가? 다시는 그를 「30은전」으로 팔고 죽게해서는 안된다. 이런 짓은 한번으로 충분하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재연케 하지 말아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이 아침은 이것을 위해 비롯했고 이것을 위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부활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