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祭나 修道者의 不足을 慨嘆하고 우리나라 그리스도化의 將來를 憂慮하는 人士들이 많다. 그러나 이 問題를 진지하게 硏究하고 거기에 對處할 根本策을 樹立하며 革命的인 實踐을 果敢히 遂行하지 못하는 指導層의 微溫的인 態度를, 비록 거기에는 許多한 因難과 特히 經濟的인 隘路가 있음을 十分 知悉하면서도 本欄은 一沫의 不滿을 表示하지 않을 수 없다. 福音傳道에는 첫째도 둘째도 우선 聖職者의 數爻가 많아야 한다는 簡單한 理致도 있거니와 우리 敎會가 다른 各種事業에 盡力하는 것 만큼 聖職者 養成에 쏟는 努力이 不足한 感이 不無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는 司祭나 修士 修女의 不足의 原因이 위에서 指摘한 데에만 있다는 말은 決코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 最大의 原因은 志願者의 不足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亦是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聖職者의 不足과 그 養成의 許多한 問題를 論위하기 前에 우리는 첫째 우리나라의 聖職者의 現況을 再認識해야 할 것이며 둘째 聖召의 發見을 爲하여 過去의 無關心을 反省해야 하며 셋째로 聖召育成에 積極的인 協力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1966年, 即 昨年 6月末 現在로된 敎勢調査에 依하면 우리나라 總人口 2千9百30萬6百21名에 對하여 敎友 總計는 不過 70萬6千百29名으로 되어있다. 修士, 修女의 數는 우선 제쳐놓고 神父의 數만 본다면 邦人神父 385名 外國人神父 330名 合7百15名으로 人口比例로는 4萬1千名에 神父 1名이 主의 福音을 傳해야 하며 또 神父 한분은 1千名의 敎友의 靈魂問題를 걱정해야 하게된다.
그러나 이 數字는 計算上의 數字요, 本堂神父 한분이 2천명이상의 敎友를 다스리고 있음이 우리는 잘 알고 있는 터이다 더구나 韓國人神父는 近3千萬人口에 不過 4백명 미만이란 이 기막힌 數字를 우리는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聖召는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제각기 어떠한 형식으로라도 天主의 事業에 헌신하며 天主의 영광을 地上에 현양하는데 協力하도록 안배되어있다. 우리의 사랑하는 子女들이 將來에 그릇된 길을 걷고 信德을 잃기를 願하는 父母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子女들의 將來 人生船路를 天主님은 果然 어떠한 길로 按配하시는지 父母들은 누구나 다 알고싶은 일이 아니겠는가?
萬一 父母들이 잘못 乃至 無關心으로 聖召가 死藏되어 모처럼의 씨앗이 발아하지 못하고 健全한 發育과 成長의 機會를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그 父母는 天主臺前에 父母로서의 任務와 責任을 다하였노라고 할 수 있겠는가. 本來 聖召가 없는 兒童을 神學校나 修道院으로 보내는 父母들의 虛慾과 聖召가 없는 靑年이 聖職者가 된 虛榮을 우리가 크게 非難한다면 眞實로 聖召가 있는 靑少年을 부모들의 그릇된 指導와 敎育으로 그 聖召가 올바르게 育成되지 않았거나, 또 聖召를 拒逆하여 不應하는 靑年들도 같은 非難을 받아야 할 것이다.
聖召의 發見과 그 育成은 家庭에서 始作된다. 父母들은 子女들에게 聖召에 對한 關心을 가지게 하며 子女들과의 共同祈禱 등 家庭聖化에 積極 힘쓰는 가운데 子女들의 知能, 性格, 信仰生活의 態度, 志向 等을 細心히 觀察하며 무엇보다도 間斷없는 祈求로 天主님께 聖召開發을 請해야 할 것이다. 父母는 意識的으로 本堂神父나 다른 聖職者와의 接觸의 機會를 마련하여 個人的인 指導를 付託하여 精神과 靈魂의 指導者들의 聖스러운 生活을 子女들로 하여금 알게할 生活을 子女들로 하여금 알게할 義務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聖召의 有無를 알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点은 亦是 專門家인 聖職者나 그 兒童을 잘 아는 本堂神父와 相議하여 指導를 받아야 할 것은 勿論 內外間의 協力과 子女들의 聖召를 위한 꾸준한 祈禱가 絶對 不可缺함을 再次 强調해두는 바이다.
聖召의 發見과 特히 그 育成을 위한 重要한 機關의 또하나는 小神校와 交友子女를 위한 寄宿舍라고 하겠다.
小神學校는 戰前에 地方各敎區의 것을 閉止하고 서울 一個所에 두었던 것을 昨年 兩年에 地方敎區 또는 修道團體에서도 新設하여 志願자를 募集하고 있음은 우리나라 司祭養成氣運에 拍車를 加한 것으로 크게 慶賀해 마지 않는 바이다. 그러나 小神學校는 神學校가 아니다. 嚴密한 意味로는 聖召의 發見 또는 確認處요 育成을 위한 苗床에 不過한 것이다. 그런 意味로 小神學校라는 校名을 붙이지 않고 例컨대 善牧中高校 같은 一般校와 恰似한 校名으로 한 것은 適切한 措置라고 하겠다. 小神學校에 進學했다고 해서 다 大神學校로 進學하여 聖職者가 되지 않은 것이 過去의 經驗이다. 오히려 志願修學한 學生中 不過 몇%밖에는 城地갖가 되지 않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조금도 失望할 理由는 없다. 小神學校를 卒業하여 社會에 進出한 사람들은 비록 聖職者로서의 聖召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철저한 敎理의 知識과 修道者的인 訓練 등으로 敎會를 위하여 또 社會를 위하여 훌륭한 平信徒的 使徒職을 遂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小神學校의 敎育을 單純히 大神學校의 準備敎育에 置重'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敎會의 「에맅트」 養成, 將來에 指導者로서의 素地育成을 爲主로 하는 敎育制度로 改編할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如何間 小神學校는 神學校가 아닐진데 聖召의 發見과 育成을 爲하여 父母들은 失敗만을 憂慮한 나머지 子女들의 小神學校 進學志願을 過大評價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一般도 小神學校만의 卒業者를 白眼視하는 일 없이 敎會의 훌륭한 役軍으로 善用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聖召의 發見을 위하여 敎友男子靑少年 學徒들을 爲한 寄宿舍를 各級敎會學校에 倂設하여 信仰的 共同生活을 指導하는 한편 聖召發見과 그 育成의 機會를 廣範圍하게 마련해 줄 것을 9日의 全世界聖召育成을 위한 祈禱日을 맞아 提議해 두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