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주교님이 은퇴했다. 반사경자는 그의 서울 명동 보좌신부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성가대를 지도하다가 어느 사이에 밑에 내려와서 연보금을 거두고 있다 이렇게 다망한 보좌신부 생활을 근 10년 했다. 그는 음성(聲樂)과 웅변도 좋았다. 이 땅에서 일인들이 마지막 발악을 할 때 일인주교 임명이란 그들의 예상을 뒤엎고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보좌신부에서 일약 주교로 성성된 것이다. ▲세월은 빨라 금년이 주교성성 25년을 맞이하게 된다. 홍안의 젊은 보좌신부였던 그분이 이제는 어느듯 주름살이 진 백발 노인이 된 것이다. 일제의 탄압을 비롯하여 자유당 정권의 구박도 많이 받아왔으나 수도 주교란 좋은 조건 하에 이나라 가톨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서 동분서주, 많은 일을 하였다. 바아도 여러차례 건너간 바 있다. ▲그는 대단한 정력가로서 왠만한 회합에는 거의 참석하여 공동체의 장(長)으로서 교회 각계에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성무일도 속에는 「레지오 마리에」이 「떼세라」가 꽂혀있었다. 이것은 「앋쥬또리안」이란 협조단원격에서 전교의 정화인 이나라 「레지오」 활동에 기도로 격려와 위로를 준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의 권위로 교회를 다스리는 분이었으나 우리를 언제나 평민적으로 형제답게 대해주었다. 성 아우구스띠노의 아름다운 말은 노 대주교님에게 해당된다. 『그대들을 위해 나는 주교요 그대들과 함께 나는 그리스도 신자이다』 ▲이러한 주교님이 건강상의 이유로 갑자기 은퇴하여 전등도 없는 두메산골에서 나병환자들의 친구가 되었다. 세상은 놀라고 그의 은퇴를 못내 아쉬워했다. 신문들은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감사해 마지 않는다. ▲돌이켜 보건대 이 나라에서도 현대화를 부르짖고 「바티깐」에서도 이젠 늙은이들은 물러앉는다. 이런 뜻에서 그분이 좀 더 일찍 물러나셨다면 그의 주름살과 백발이 줄었을 것이 아닐까고 송구스런 생각이 든다. 또 한편 주교직 25주년 은경축이란 드문 경사에 잔치를 해드리지 못하고 떠나 보낸 것이 애석하다. ▲위에 성 아우구스띠노의 말을 다시 읽어보자 『전자는 위엄을 후자는 구원을 뜻한다』고 했다. 마지막 인사에서 많은 결점과 부족에 해량(海諒)을 청했다. 그렇다. 큰 나무는 바람을 많이 타는 법이다. 교회를 위해 일하다 보면 실책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을 잊을 수 없다. 교회는 신적 요소에 불안전한 인간적 요소가 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 신자들은 은경축을 정성껏 축하해 드리고 주교님도 『나는 이제 물러앉겠오』하는 선물을 우리가 받았다면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그를 떠나보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