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출판물보급주일을 당해 전국각처에서 본당신부님들이 현대에 있어서 출판물의 중대성을 교우들에게 여러면으로 일깨웠을 줄 안다. 그런데 실은 예외도 없지 않는 것 같다.교회사목방침은 어느정도 통일되어 있을터인데 신부님들 개개의 사전 견해내지 사목방침은 그렇지도 않는 모양이라, 어떤 신부님은 직접 출판물을 맡은 당무자들이 간곡히 이 일에 협조를 바라지만 무엇이 그리 못마땅 한지 오불관언이란 태도다. ▲이런 때는 사실 하나인 교회니, 한우리니, 대화니, 천주의 한백성이니, 현대적응이니 하는 말들이 다 어디서 생기고 무엇때문에 생긴 것인지 조차 알도리가 없고, 그 피안의 부구경하는 듯한 냉담한 얼굴엔 개탄을 넘어 한심한 경지에 이른다. ▲그런 반면 어떤 신부님은 신자인구가 많은 모본당을 찾아가 여섯대나 되는 미사의 강론을 도맡아 가지고 출판물을 읽어야 올바른 현대 교우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미사후엔 직접 출판물을 한아를 들고 나와 『신문 사시오』 『잡지를 보십시요』하고 신문팔이 행세까지 했으니 이날, 이 신부님의 사목태도야 말로 바로 「메스 콤」적 수법이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글도 못읽는 어떤 꼬부랑 할머니 조차 『신부님이 저렇게 보라고 하시는데 낸들 안볼수 있나』하면서 구독신청을 했다. ▲또 어떤 본당신부님은 강론 중에 교우로서 교회출판물 한가지라도 읽을 힘이 없는 사람은 말만하면 본당신부가 직접 사주겠다고까지 하면서 『제발 핫바지 방귀 세듯이 슬며시 새려고만 말고 한가지씩 신청하고 가라』고 해서 교우들이 모두 요절복통을 했지만 이 신부님의 소박한 농담처럼 소박한 자세(?)로 나가는 교우들에겐 그래도 일말의 반감마조차 가질수 없다. ▲『가톨릭시보 보시렵니까?』고 다가가 상냥하게 물을라치면 「뉘집 강아지가 짖어대는가』 싶은 표정으로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 버린다. 그런 오만한(?) 자세를 취하는 교우치고 초라한 행색한사람 거의 못 봤다. 아닌게 아니라 어찌 그만한 자신없이 더구나 성당내에서 부질없는 약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의 좋은 목적으로 한가지 권유래도 좋고 청이라도 좋은 것을 드리는 사람에게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을가? ▲사실 이쯤되면 출판물하나 읽고 안읽고가 문제가 아니다. 기계적이고 타성적이고 타산에 각박한 현실속에서 주일 하루나마 교회로 돌아와 어떤지 흐뭇하고 감동하고 잠시나마 改心하는 상태에 있을 그런 처지에 여전히 얼굴을 굳힌 그 非情的인 표정에 소연한 감마저 느낀다. 도대체 교회에 오는 목적이 무엇인가? 이런 현대인의 맹목적 타성적 무감동의 신앙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교회의 「메스콤」은 질적으로 양적으로 향상되어야 할 것이며 그리고 司牧의 方便인 교회출판물보급은 바로 司牧者들의 의무임은 두말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