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후이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를 해야 하고 오는 6월 8일엔 제7대 국회의원의 선거가 있다. 선거때만 되면 으례 정치인들은 북을 치고 국민들은 자연이 그곳에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권자 중에 많은 사람들은 누구에게 표를 찍어야 할지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사실, 무슨 일에나 적임자를 고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한 나라의 원수나 국회의원으로서의 적임자를 몇몇 입후보자 가운데서 가려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유동(流動)하는 국내외의 정세를 알아야 하고, 모든 입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되어 있어야 하고, 또한 스스로의 정서적 식견(識見)에 맞는 자를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앙인에겐 또 하나의 신앙적인 「비젼」이 있다. 물론 이 「비젼」이 신앙인들만의 이익을 위한다거나 정치를 신앙과 혼동하여 「그리스찬」끼리의 통치구조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신앙인에겐 그 신앙을 통한 정치관(政治觀)이 있다는 뜻이다.
초대교회때는 정치인과 「그리스찬」은 상용(相容)될 수 없는 사이였다. 그래서 3백년의 박해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중세(中世)에 와서는 정치인과 성직자가 혼동될 만큼 가까웠다. 그래서 많은 성직자가 속화(俗化)되고 교회가 정치인에 이용되어 마침내 소위 종교개혁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겪어야 했다. 「띠롤」 산중에 모인 교회 신학자들은 교회를 쇄신하고 교의(敎義)를 천명(闡明)하고, 이단자(異端者)를 몰아내는데 골몰하였다.
그 때의 신학자들은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부르짖었다. 즉 교회는 천상의 복락을 위한 단체이고, 국가는 현세의 복지를 위한 단체이기 때문에 서로 다스리는 영역(領域)이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신앙인은 의식적으로 정치에서 멀리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는 여기서 하나의 종합된 「비젼」을 찾아냈다. 그 「비젼」이 가장 명백하게 제시된 것이 바로 지난번에 열린 제2차 「바티깐」 공의회였다.
교회는 현세의 윤리와 평화에 관여 하여야 할 뿐 아니라 지상의 복지를 통한 인류의 구령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어진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찬」은 천주께로부터 받은 각자의 적성(適性)을 닦아 현실에 깊이 참여하고 그 신앙적 「비젼」으로 현실을 천주의 나라로 이끌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다.
현세는 구령을 준비하는 곳이다. 안류의 목적니는 물론 현세에 있지 아니하고 내세(來世)에 있지만은 내세의 구령이 준비되는 곳은 바로 현세이다. 그러기에 현세의 모든 정치는 인류에게 내세의 복락을 누리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야 한다. 물론 정치의 목적이 곧 국민의 구령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구령은 각자가 스스로 그리스도의 구속공로(救贖功勞)를 받아야 하는 자유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이를 방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권과 정의와 선(善)을 보장하고 육성하여 그 사회의 공동선속에서 쉽게 하느님을 알고 따를 수 있는 현실을 마련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찬」은 더욱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 하여야 한다.
국민들의 구령의 도장(道場)을 마련하는 일이기에 그것이 바로 신앙의 발로(發露)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정치가 그 나라 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나 스스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지대(至大)한 영향을 미친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예로서 우리는 공산주의 뿐만이랴. 구령의 기본이 되는 윤리적인 해악(害惡)을 합법화 하고 권장한다거나 선과 정의를 부정하는 그릇된 가치관(價値觀)을 그 정책면에서 강요할 우려(憂慮) 있는 정치인은 제아무리 정치적 수완이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찾는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은 대중이 계몽자요 국민의 운명(?)을 맡은 중요한 지도자이다. 그러기에 그 인품과 정치적 식견이 탁월하고 그 실천을 위한 수완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정치관이 우리의 신앙적 「비젼」에 맞아야 한다. 또한 그런 사람을 골라 투표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신앙적 의무이다. 만약 평소의 정리(情理)나 이권의 약속에 끌리거나 가문(家門)이니 체면을 따르거나, 혹은 증오(憎惡)하는 감정에 사로잡혀 그 선택을 그르친다면 신앙인으로서의 중대한 의무를 어긴 책임을 지게 될 뿐 아니라 그 결과가 많은 영혼을 멸망의 길로 이끌게 된다는데까지 우리의 생각이 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