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 12세께서 일찌기 『행동의 때는 왔다』고 외치신적이 있다. 그때 우리 청년들은 이에 호응하는양 궐기대회라는 것을 가졌던 일이 있는데 바로 그 이듬해에 6·25공산남침을 당했던 것이다. 이번 무장공비 남침사건 후 대한민국은 원통 반공궐기대회라는 「인푸루엔자」를 한바탕 치뤘으나 우리 가톨릭만은 무사(?)히 지내고만 것 같다. 이런 따위 행사가 그것만으로서 과연 얼마만큼의 성과를 올릴 것이냐?고도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다. 반공의 본고장이 가톨릭이 아닐까? 그런데 이 본고장에서는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냇적 윗적 또는 능동적 수동적으로 말이다. 3·1운동때 우리 가톨릭인 제 나름으로 만세를 부르기는 했을 것이다. 그런데 33인 중에서는 그 이름을 찾지 못했으며 그중에 『한분만이라도』하는 아쉬움 같은 것을 가끔 씹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행동을 의거라 하는데 대해서 우리교회가 이견(異見)을 말하는 것은 듣지 못하고 있다.
그가 여순감옥에 갇혀있을때 홍신부께서 민대주교의 허락없이 독단으로 가서 성사를 주고 그 때문에 보속을 받은후 교황청에 상소했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확실히 행동하는 분이었던가 싶다.
이번 강화도 「노사분규」사건에 주교단의 성명 JOC의 활동 등은 「레룸 노바룸」 「꽈드라제씨모 안노」 반포이때 가톨릭 한국의 「힛트」라 할 것이다. 반면 동성교장임면(任)사건은 『에라』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일전 명동입구 지하도 한구석에 앉아있던 불구자 거지 앞을 지나치면서도 돈 한푼을 척 던저주지 못한 것이다. 『딸랑딸랑』 구세군자 선냄비 소리도 못들은척 지나치고 마는 것이며 큰 보따리를 머리에 얹으려 애를쓰는 길가 여인에게도 선뜻 나서지를 못하는 것이다.
성당에서 뭣좀 한다할때에도 꽁무니 뺄구석을 찾곤하는 것이다. 나는 돈에 인색한 것이라기보다 행동에 인색한 것이다. 때와 장소라는 물감, 체면이라는 색깔로 염색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이불속에서나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악시오 가톨리까, 악시오 가톨리까』라고 중얼거리면서. 제때에, 알맞고 과감한 행동을 할 줄 아는 가톨릭인이 많이 나서주기를 바란다.
崔常善(서울 마리아병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