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敎會史上 처음으로 본격적인 平信者神學硏究會가 最近 서울과 光州에서 각각 開催되었다. 두 연구회서는 本紙에 기보한 바와같이 전교구 대표가 한결같이 역사와 考證을 通한 平宿者의 使命과 任務에 대하여 강조했다. 韓國의 모든 聖職者와 信者들이 이번 講議를 다함께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 主로 平信者와 聖職者에 관한 內容을 간추려서 초개하여 보면
①第2茨 「바티깐」 公議會의 가톨릭은 現代化하려고 몸부림치고 있고 하느님의 百姓인 平信者에게 새로운 門이 열렸다는 것.
②主敎·神父·修女는 모두 하느님의 百姓으로서 平僧者들에게 奉仕하기 위하여 선택되었다는 것.
③옛날 로마時代의 貴族들은 公·私權과·財産權과 通婚權을 가지고 있었으나 노예(奴隸)들은 結婚할 自由마저 없었던 때에 敎會가 自由와 平等을 부르짖고 敎育과 就業의 權利를 主張하였다는 것.
④聖職者란 뜻은 責任者란 말로서 콘스탄티노쁠 大王때 貴族과 같이 待遇하라는 特權을 주자 이들은 차표없이 차를 타는 등 횡포를 부리는 時代가 있었다는 것.
⑤韓國敎會史上 前後 60餘年동안 聖職者가 없을때 平信者만이 韓國땅에 福音의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迫害를 받아가며 敎會를 維持 保護하여왔건만 信仰의 自由를 얻고 外國神父들을 王과 같이 대우하고 洋大人이라고 부르는 등 特權대우를 받게 되자 聖職者들은 갑자기 兩班階級이 되었다는 것.
⑥信者들은 神父를 대하기를 肉親의 아버지보다 더 어렵게 대하게 되고 聖堂이나 敎會事業體는 主敎神父들의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信者들은 領詵를 했다는 罪아닌 罪때문에 無條件 順命하기만하면 된다는 精神이 은연중 支配하였다. 結果的으로 信者들이 敎會에 대한 協助 態度는 극히 徹溢的이었다는 것이 否認할수 없는 事實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75萬 平信者들에게 갈려나간 兄弟들처럼 敎會는 우리의 것이고 내 것이라는 認識을 갖게하여 敎會發展에 적극 協力케하자는 것이 發言要旨라고 보겠다.
果然 現在 韓國敎勢를 보면 南北韓 4千萬人口에 가톨릭 75萬과 基皙敎 1百93萬을 合한 比率은 7% 밖에 되지않고 더구나 가톨릭만을 比해보면 2%가 채 못된다는 實情 이다. 「基督敎手帖」을 보면 現在 司牧하고있는 牧師數는 9千3百명쯤 된다.
이런 統計를 대강만 줄잡아도 가톨릭이 韓國에 들어온지는 180年이 넘었으나 基督敎는 80年이란 比較的 짧은 期間동안에 가톨릭 보다 2倍半의 結實을 맺었다는 計算이 나온다.
某人士의 말에 의하면 가톨릭信者들은 聖堂 안에서는 혼자만이 하느님과 直通하는양 熱心하지만 일단 社會에 나가면 내가 언제 者者였더냐는 듯이 사랑에는 매말랐더라는 것이니 이는 教育의 根本的 差異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第2次 「바티깐」 公議會는 하느님의 百性에게 門戶를 활짝 열어놓았다. 南北韓 4千여寓名을 福音化하기에는 7百50명의 神父들만으로는 漢江 投石格이 되지 않을가 한다. 그러나 그 千倍가 되는 75萬명의 本信者의 힘으로는 1人當 50명만 상대하는 계산이 되니까 社會와 對話의 광장이 좁혀질 可能性이 눈앞에 보인다. 이와같이 司祭數가 人口數에 比하여 태 不足한 現時點에 平信者의 活動없이는 敎會는 存續할수 없는 것이다.
公議會後의 가톨릭은 敎理中心에서 福音中心으로 옮아가고 있다.
人類는 長久한 歷史동안 科學探究에서 不擬을 거듭하던 중 18世紀末葉에 왓트가 電氣를 發明하여 人間은 自然의 힘을 利用하여 自然을 극복하게 되자 世界는 急進的으로 「다이나마틱」하게 發展하여 月世界까지 物體를 보내고 있다. 한편 가톨릭은 토마스 아퀴나스 哲學과 新學을 啓示眞理인양 絶對視하는 傾向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6百年前 사람이고 神이 아니다. 그 當時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地球는 판판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따라서 天堂은 위에 있고 地獄은 땅 속에 있는 것처럼 믿었다. 그러나 現代 神學者들은 사람自體이신 하느님이 원수를 無慈悲하게 永遠한 불에 처벌한다는 地獄은 創造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과 奉仕心이없이 天堂만을 가려고 聖堂에 다니는 사람은 信仰이 없는 者라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韓國가톨릭도 5年前에 比하여 多少 變했다. 敎會一致를 向하여 對話가 始作되는 오늘날 공복재가, 또 대재소재가 어떻고 하는 敎理 中心의 傳敎方式이나 聖堂울타리안에서만 活動하는 테두리를 벗어나 혼연 福音中心의 사랑의 깃발을 높히 들고 예수께서 弟子들의 발을 씻어주는 그런 겸덕으로 社會에 뛰어 들어가 社會와 함께 숨을 쉬고 生活하며, 社會를 救援하고 淨化하여야할 時期는 발앞에 온 것이다.
예수께서 使徒들에게 가르치고 다스리고 거룩케하는 權限을 주셨으니까 가톨릭안에 敎權은 반드시 必要하다. 그러나 敎會는 다 내 것이니 너희는 干涉하지말라는 그런 思考方式은 없겠거니와 적어도 敎會나 事業體의 運營面에 있어서는 民主方式을 따라야 할 것이다. 혹시 教權만을 찾다가 判斷不足으로 公金을 잘못 處理하거나 더구나 敎會에 損害를 끼치는 結果를 가져와 歴史의 罪人이 되지 않기 위하여는 平信者를 包含한 有機的인 組織體로써 計劃하고 管理監督하는 것이 當然之事라고 하겠다. 또 平信者들에게도 잦은 敎育과 「세미나」를 通하여 人類와 世俗을 하는데 맡은바 職責을 다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만 보다 나은 敎會發展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