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대 대통령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6·8의 또 하나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성실과 참여의식을 요구하는 막중한 시기이다. 이같은 선거때일수록 부정과 부패를 규탄하는 비판의 소리는 더 높고 진지하며 반응도 심각하다. 설령 당선만을 위한 것일망정 반응은 주리를 틀리듯 보이는 형국(形局)이다. ▲공산세계와 자유가 논의될 때마다 강제적 「자아반성」이란 것이 몸서리쳐질 만큼 구속적인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 교회는 말을 달리하지마는 자유를 근저(根底)로 한 각성과 쇄신을 너무도 공공연하게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오히려 운명을 걸다시피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 세계와 인류를 향해 인간성을 상실하고 이기적이며 지나치게 물질을 탐애(貪愛)한다고 힐책(詰責)하고 있다. ▲교회는 오늘 모든 천주의 백성에게 먼저 각성을 요구한다. 폐쇄적 · 형식적 · 권위주의적 · 배타적 버릇을 고치고 몰아적(沒我的) 봉사를 하라고. 바로 한국의 비크리스챤들도 꼭같은 비평과 요구를 하고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발을 손수씻음으로 교훈하고 있다. 그것은 천주의 백성 전체에게 한 것이다. ▲공의회는 이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너무도 비(非) 중세적 노력으로 과도기적 형상을 초래케 했다고 걱정을 듣고 있다. 구각(舊殼)을 벗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이런 점에선 오히려 공산치하의 자아반성자들이 더욱 솔직하고 용감하며 성실하다. (열성당원일수록) 악습을 버리기가 힘겨워서 오늘의 교회를,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과도기」라고 일컫는지 모른다. ▲필립핀서 개최된 교리교사 연구주간 폐회식서 인도의 한 대주교는 교회가 주는 아세아인에게의 인상은 너무도 이방적(異邦的)인 것이라고 개탄했다. 교회의 대명사는 흡사 부귀와 권좌(權座) 그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언젠가 교회를 걱정하는 한 신자는 오늘의 한국교회 신자증가상(相)을 「황금기」로 이름짓는 것처럼 어리석고 그릇된 판단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토록 인간적이며 사랑이 샘솟는 복음을 들고 가난과 굶주리는 겨레 속에 뛰어들어 몰아적 봉사를 했던들 그야말로 알찬 황금적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언이 역이」(忠言逆耳)하면 결과는 빤하다. 왕다운 사제군(群)이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기 전에 구원의 대상자들끼리임이 현실이다. 먼저 모두가 인간으로의 복귀가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