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3일은 「파띠마」 성모발현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세계 각지에서 이날을 전후해서 여러가지 기념행사가 거행되며 교황친히 「파띠마」에 순례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기회에 「파띠마」의 제삼 비밀 공개 여부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자들이 있을 것이다.
5월 13일에 많은 순례자들이 「파티마」에 운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파띠마」의 비밀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비밀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복음 속에서 이미 알고 있다. 「파띠마」의 「메시지」는 그 내용에 있어 복음과 마찬가지로 단순하다. 「파띠마」의 「메시지」의 요소는 회개와 죄의 거부 가운데 보속과 기도로 그리스도적 쇄신과 은총에 의한 그리스도적 생활이다. 달리 말해서 「파띠마」의 「메시지」는 인간의 불신에 일격을 가한 것이요 희생과 그리스도적 덕행의 실천이 도덕의 부재에 대한 유일한 약임을 알렸다. 우리는 전쟁과 분열과 가치의 전도와 사회질서의 파괴와 물질적 쾌락의 열광적인 추구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인간을 향상시키는 모든 것을 반대하는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여기 저기 원수가 가져온 몇가지 성공이 있다. 그러나 그 승리는 결코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 시대가 이렇게 위기에 놓여있을지라도 기도와 보속이 이 자소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생활을 「파띠마」의 「메시지」와 합치하게 노력만 한다면 새 세상의 건설자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인간을 변화시키고 변형시키는 이 새로운 탄생이 교회이 업적이요 목적이다. 가톨릭자(者)의 입장은 가톨릭자의 의지에 달려있다. 강의하고 강한 저학력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내일이 올 것이다. 「메시지」가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 여기에 있다. 「파띠마」의 발현은 죄와 은총과 그리스도의 구원을 부인하면서 천주없이 새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무신적 공산주의의 대혁명과 때를 같이해서 있었다.
「파띠마」에서 성모는 오늘의 무신론자의 모든 형식에 드러나게 도전했다. 「루르드」가 19세기의 理性主義에 대한 성모의 회답이었다면 「파띠마」는 20세기의 무신적 공산주의에 대한 성모의 회답니다. 「파띠마」는 불안한 이 세계에서 교회를 파멸하고자 한 무신적 공산주의에 대한 희망의 등대처럼 빛난다. 「파띠마」에 순례하면 천주의 어머니의 집에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우리에게 기도하고 회개하라고 하신 그의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작은 루시아는 이 「메시지」의 내용은 루시아의 마음의 비밀 속에 아직 감추어져 있을 것이고 그 비밀을 보관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그것을 공개하는 것이 아직 적당치 않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때문에 교리성성은 「고임브라」의 갈멜수도원 울타리 속에서 고요히 수덕에 전념하고 있는 루시아를 위해 호기심을 갖고 방문하는 자들의 접근을 금하고 있다. 우리는 비밀이 되어있는 「메시지」의 내용을 공연히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버리고 『그 땅은 거기 사는 자들에게 짓밟혀 더럽혀졌도다』란 「이사야 예언서」에 있는 무서운 벌을 면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기도와 보속에 있다고 성모가 말한 것을 실천할 따름이다. 즉 영혼의 쇄신과 영적 재생을 위한 회개 그리고 기도하는 교회와 같은 생각, 같은 희망, 같은 감정을 가지느느 것, 이 두가지 방법이 모든 신자들에게 표시된 교회의 方向일 것이다.
기술과 물질과 교만과 聖性을 거스리는 모든 것으로 억눌린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오늘 가장 필요한 기도와 희생의 정신으로 우리 마음을 변형시켜달라고 5월의 성모께 빌자. 여기 선이 악을 이기는 비결이 있다.
「파띠마」의 성모가 이 승리를 우리에게 가져오기를 빌자. 십자가가 심어진 이 넓은 땅에서 「파띠마」의 성모가 모든 시대의 원수들을 거스려 그리스도 신자들을 방어하는 성벽이 되어달라고 빌자. 요는 우리가 기도와 보속으로 생활하면서 「파띠마」의 「메시지」에 신뢰하는 것이다.
아직 희미하나마 요즈음 그리스도의 평화 속에 세상은 장차 안정될 것 같은 흔적이 엿보이는 것 같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빋어도 좋다면 우리의 마음은 희망으로 뛸 것이다. 「파띠마」 성모 발현 50주년에 우리는 성모의 「메시지」에 신뢰를 두어도 좋을 것 같다. 『머리를 위로 들라, 보라 우리의 구원이 가까웠도다』란 기쁜 소식에 우리는 『그대로 되어지이다』해도 좋기 때문이다. 여기에 「파띠마」 성모발현 50주년을 기념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