孤立主義란 표현을 하면 너무 심하지만 아무튼 우리교회 내에 아직도 저런 일부 경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이것은 과거 자기 개인의 救靈爲主만을 신앙생활로 알던 타성의 所致로서 성직자와 신자사이에, 신자와 신자사이에, 성직자와 성직자사이에 본당과 본당사이에, 교구와 교구사이에, 교회기관과 교회사업체사이에, 교회와 사회사이에 공동의식의 결여들 쉽게 지적할 수 있다.
이제 「로마」가 共同救援의 旗轍를 내건 것은 실로 예수께서 친히 창설하신바 우리 公敎會들의 면목을 되찾기 위한 즉 저러한 인간의 孤立的인 벽과 담을 헐어버리기 위한 노력외에 딴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는 성직사회에 있어서까지 타교구 인물이기 때문에 으뜸으로 섬길수 없다든가, 타교구 출판물이기 때문에 사보기를 거절한다든가, 심지어는 교회사업기관이 교우의 기용을 꺼린다는 평판마저 있었고 평신자들 사이에서는 사회생활에 있어서 유대와 협력을 오히려 떳떳치 못한 것으로 여기는 기풍도 없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우리 평신자들의 사회생활이란 거의가 「獨不將軍」이라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우리교회 사업만해도 전국적 힘을 합했다면 20여년 키워온 언론기관을 하루아침에 내놓지 않았을 것이요, 어느 외국 수도단체가 「챤넬」까지 마련하였던 방송국설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만일 지금이라도 우리교회기관이나 사업체가 전국적으로 단결만한다면 厚生金庫하나쯤은 넉넉히 운영하여 금융의 편의를 볼 것이며 또 그 종사자들의 老後의 대책, 즉 年金制度 같은 것도 실현을 볼 것이다.
그리고 한편 교회의 기관이나 사업도 어떤 신부 개인의 趣向이나 그 능력에만 의존하는 폐습은 止揚되어야 하고 언제나 전교구적으로 또는 전국적인 配慮와 계획과 그 검토밑에 추진되어야 할 줄 안다. 물론 나는 저러한 모든 이제까지의 사정뒤에는 한마디로 평론할 수 없는 複合的인 사정과 制度나 그 機構의 制約이 있었음을 알고 인정하지만 또 한편 우리 교회의 보편적 단일성을 맛보고 그 무한히 발휘될 가능성에 기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번 江華 JOC사건에 보여준 주교단의 의연한 태도는 그 사건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사회 각 부문에 종사하는 전체교우들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皷舞와 기쁨을 주었는지 모르며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에 가톨릭에 대한 재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우리교회의 가르침이 社會原理로서 가장 정당하고 優越한 것임을 밝혀 주웠을뿐 아니라 또한 교회가 대 사회처신에 있어 당당하고 떳떳함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실상 우리 한국교회의 오늘날까지의 사회처신이란 한마디로 「로마」라는 큰 응호 아래서 너무나 安易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쉽사리 현실과 타협하고 또 그 疪護 속에 安住하려 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와 반대로 外面하고 초연하려드는 기색마저 없지 않았다. 이러한 遠因에는 外邦전교회가 이사회에 뿌리박기 위한 方便이 빚어낸 一面도 있다. 또한 이건 입에 올리기도 치사하지만 해방 후 그 救護물자 취급때문에 교회의 일부가 물질주의에 떨어진 느낌도 없지 않다. 이런 속에서 교회내에 外貨밀수출사건이 나고 不渡수표 사건이 나고 파렴치 사건마저 발생했다.
이제는 시대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또 우리교회도 변하고 성장했다. 이제야말로 우리교회가 이나라 이사회의 正義秩序 구현의 소금이 되고 누륵이 되고 기둥이 되어야 할때요, 그래야만 公敎會요, 그 信仰者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먼저 성직자와 평신자와 교회내 모든 노력의 孤立과 分散을 피하고 獨善과 獅走를 막아서 共同救援으로서의 公敎會의 眞價와 眞面目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나의 閑談은 끝을 맺는다. 그동안 내가 스스로도 모르게 犯한 신앙적 誤繆와 교회에 대한 妄言이 있었겠기에 이를 忠心으로 사과드리는 바이다.
(끝)
具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