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의 기본사상은 겸손의 토대위에 세워진 사랑의 실천, 특히 「사랑의 새 계명」 실천을 신앙에 대한 올바른 순명정신에 입각해서 이룩하는데 있다할 것이다. 오늘날 이 사랑의 새 계명 실천이 다른 어느때 보다도 시급히 요청된다고 본다. 이 계명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방법으로서 특히 두 가지 요소를 필요로 한다. 그 한가지가 성사적 요소로서 사랑의 성체성사요, 둘째는 인공적인 요소로서 그리스찬의 순명이다. 즉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께 대해서 가져야할 올바른 순명정신이다.
특히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이후 순명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으니 가톨릭신앙에 입각한 옳바르고 정통적인 순명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이에 앞서 오늘의 시대사조를 고찰해 보건대 무슨 권위와 권리로 순명을 요구·명령할 수 있는지의 이유를 캐고 끝까지 밝히고자 하는가하면 심지어는 이해관계까지 따지고 드는 수가 일쑤다. 이러한 시대사조는 평신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에게도 서서히 침투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특히 지난번 본난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평신자들이 교회의 권위, 다시 말해서 교황님이나 주교님이나 본당신부님의 공식적인 지시나 명령에 비판적일 때가 있다.
오늘 이 시대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너무나 명백히 독립정신을 고무시켜 주고 있다. 즉 여러가지 발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사람을 인간만능주의로 도취하게 하는가하면 공산주의는 지상에서 하느님의 권위를 박탈케 하고 민주주의는 우리를 아무하고나 손잡을 수 있게끔 숙련시켜 줌으로써 인간이 하느님께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크나큰 영향을 끼쳐주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하느님의 계시를 깊이 묵상할때 루치펠과 그 악신들 그리고 우리원조 아담과 에와가 하느님께 대한 교만에서 오는 불순으로부터 인류의 불행이 시작될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너희가 만일 그 사과를 따먹으면 천주와 같이 될 것이요,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되리라』(창세기 3,5) 여기서부터 인간의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교회는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시고, 사람의 성체성사와 사제성직을 설정해 주신 성주 목요일 성찬의 대례 미사때의 독서에서 그리스도의 순명을 최고로 찬양하는 사도바오로의 말씀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당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며 더구나 십자가상에 죽기까 지라도 순명하심으로써…』(필립보 2,8~11).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인간구원의 계획을 겸손한 순명의 길을 통하여 이룩하게 하였다.
이 신앙의 순명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과 같이 「신앙의 원 의」를 따라가는 것을 말하며 이성의 필요성에서 움직이는 순 자연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성 아우구스띠노께서 『원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말씀과 『나는 나의 원의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나를 보내신 성부의 뜻을 준행함이니라』(요한 5,30)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결부된다. 사랑은 천주님께 대한 겸손하고 완전한 순명없이 이루워질 수 없다. 『만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요한 14,15)이 불순정신이 인간의 제일큰 결함이요, 유감이며 계시의 정신에 크게 반대되는 것이다.
지능의 작용을 통하여 여러가지 핑계로 자기 고집을 합리화시키고 변명하며 순명을 거스리는 유감이 제일 날카로우며 마귀는 이 방면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바로 이 순명을 실천케 하셨기 때문에 교회가 순명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신앙의 근거를 소홀히 할때마다 우리는 이미 우리자신을 망각하여 너무 교만하기 때문에 그 근본정신을 못 알아듣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순명의 정신 속에 깊이 간직하지 아니하면 순명하기가 극히 어렵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교리를 다 알고도 입교하지 않는 교만한 식자들의 태도요, 날카로운 이성적 교만 때문에 천주님의 신앙의 가치를 인식치 못한다. 『너희가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하리라』(요한 15,5) 『그러나 나는 나를 견고케하여 주시는 님안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필립버서 4,13)
오늘 천주님께 대한 지대한 경의심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오늘의 인간은 아무에게 대해서나 존경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천주님의 모상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천주님께 대한 경건심을 잃으면 사람에 대한 존경심마저 저절로 사라진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종교가 무시된 나라에서 인간이 무시되고 있는 모양이다.
공산국가의 현실이 그 적절한 실례라 하겠다. 아브라함 요한세자 마리아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왕국도 몇 간택된 자들의 영웅적인 순명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즉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가톨릭교회 는 모든 성직자 수도자 및 평신자들에게 가톨릭적 순명정신을 요구한다. 즉 『성부여 나는 당신의 뜻을 준행하기 위하여 왔나이다.』(헤브레아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