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이면 우리는 분명히 죽은 나무가지에서 잎이 돋아나고 꽃도 피는 蘇生의 奇蹟을 注視하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나무에 대한 認識이 굉장하다. 그러므로 나무를 통해 인류에게 보내진 하느님의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면 그 메시지란 무엇인가? 인류역사를 통해서 볼때, 다른 모든 나무들 가운데서 오뚝히 눈에 띄는 두개의 나무가 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의 나무」와 「골고다」山上의 十字架 나무이다.
『우리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 나무에서 인류구원을 이루셨으니, 죽음이 시작된 거기서 생명이 솟아나고, 나무에서 승리한 자를 나무에서 패망하게 하셨나이다』(성 십자가 감사송)
이같은 거룩한 말씀으로 우리는 십자가 나무 위에서 행하신 당신의 구원계획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당신은 죽음을 가져온 꼭 같은 道具를 이용하시어 생명을 소생시켰다. 즉 우리 영혼의 원수인 사탄은 하나의 나무로서 우리를 정복했으나 다른 또 하나의 나무로 말미암아 정복되고 말았다.
사순절은 우리들의 생명을 소생시킨 그 나무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생각케 한다. 여기서 우리는 『뿌리 없는 나무에 잎이 필가』라는 옛 속담을 想起한다. 우리의 생명의 뿌리는 聖誕地位이다. 우리가 大罪를 범하여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지게 되었다면 우리를 그리스도와 再結合 시키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고백성사이다. 『나는 포도 줄기요, 너희는 그 가지니라』 성총지위를 얻지 못한 채 행하는 사순절로 克己는 마치 『나무에 올려놓고 흔드는』 格인 自己過信에 불과하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를 유감에 빠지지 말게 하여 주시도록』 하느님께 기구하자. 참다운 사순절을 보냄으로써 부활축일을 맞이하려고 특별히 노력하는 참다운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생각하는 마귀의 유혹을 특별히 받고 있다. 이와 반대로 사순절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신자는 『마른 나무에 물이 날가?』하며 비웃는 마귀의 유혹을 받지 않는다.
세째로 우리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보장돼 있으므로 사순절 동안 기도와 克己와 희생을 이제는 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즉 『새로운 전례는 금요일의 肉食을 黎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순절 克己라는 낡은 規範을 구태여 지킬 필요가 있는가?』라고. 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여! 조심할 찌어다. 그리고 기억할 찌어다. 『믿는 나무에 곰팡이 핀다』는 옛말을.
끝으로 금년은 신앙의 해이다. 교황은 신앙의 共同性을 강조하시면서, 신앙행위를 혼자서 몰래만하지 말고 공개적으로 함께 同心同德할 것을 호소하셨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신앙행위의 實例를 木·林·森 세 글자에서 볼 수 있다. 하나의 숲이 한 그루의 나무보다 덜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숲속의 나무들은 세찬바람에 서로서로 의지하며 그 바람소리는 林에서보다 森에서 훨씬 더 아름답게 들린다. 사순절은 共同십자가의 길. 共同미사 等等과 같이 즐거운 공동체적 정신으로 지낼 수 있고 또한 그렇게 지내야 한다. 越南의 용감한 한국군은 평화를 위한 공동 苦行을 치루고 있으며 국토방위의 先頭에나선 우리의 경찰과 국군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죽는」 사순절을 觀想 속에서 意義 充滿한 苦行으로 지내는 갈멜수녀원의 수녀들을 그 완전한 본보기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성스러운 노력을 통해 共同生活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 그들에겐 『주는 우리주 그리스도의 공로와 우리의 육신의 재계로 악습을 누르시고 마음을 들어 높이시며, 덕행과 상급을 베푸시나이다』라는 사순절 「입당송」이 진실로 울려 퍼지고 있다.
5년 동안 이들 수녀들은 칼멜수녀원 뜰에다 3백 그루의 과일나무를 심었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그들의 苦行으로 말미암아 『죽은 나무에 꽃이 피는』 도움을 받아 왔던가 진정, 하느님께로 되돌려진 하나의 영혼은 봄철에 꽃이 피는 하나의 나무와 같다.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사순절 관습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과 『굽은 나무 쓸만한 것은 먼저 베인다』는 속담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사순절 관습이란 굽은 나무는 살아있어야 하고 존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