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人인 가가 말했는데 그 말은 기억에 없고 그 내용 따라 말하면 『일본사람은 밥알 같고 한국사람은 모래알 같다』는 것이다. 밥알은 한줄 쥐면 뭉쳐 한 덩어리가 된다. 같은 동양의 두가지 다른 민족을 적절하게 표현한 예같다. 모래알은 제나름으로 있어 獨自的이다. 외톨박이다. 너는 너 나는 나. <우리>가 아니다. 빈틈없는 모래알로 自認하기 때문에 딴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같지 않다고 본다. 과오(過誤) 지적(指摘)이나 충고를 받아들이기는 고사하고 남의 잘못이나 단점발견을 일삼고, 발견하는 대로 사정없이 단죄한다. 용서가 없다. 신축성이나 융통성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심지어는 없는 잘못을 만들어서까지 선전하는 수도 있다. 자기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래알이다. 이에 반해 밥알은 참 무능하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번 뭉치면 서로 의지하고 예속되며 그 힘은 크다. 하나가 하나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무능 유능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가 되는 또 하나에로 가는 길이다. 무능해 보이는 서로간의 존경과 눈총 즉 겸손이 없이 절원하는 통합은 절대 불가능하다. 서로가 잘낫고 서로가 자존심을 내세우고 오만을 버리지 않는다면 손에 쥔 모래같이 흩어지고 만다. 자멸하는 수밖에 없다. 이 자멸과 멸망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극도의 겸손을 취하셨다. 또 교회도 이를 이어받아 항상 <겸손 제일주의>를 하고 있다. 자아발견 자기주장과 확립. 자기 확대와 강화는 단합에, 일치에 암이다. 자아포기와 이를 위한 수련이 있어야 자신도 살고 남도 전체도 살릴 수 있다. 그리스도의 잃어야 얻고 버려야 찾는다는 말씀도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자기를 끊으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겸손한자는 본연의 자신을 바로 보고 확신한다.
결정단점 투성이요, 죄인임을 자각하고 자처한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다면 고자세를 취할 사람도 없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진 사람이 아무도 없듯.
그럴 자격도 권리도 없지만 그럴 용기마저 없다. 자발적 예속. 적극적 겸손 의식적 무능화가 삶의 바탕도 되고 일치원리도 된다.
아무렇게나 박힌 벽돌이지만 그 위치를 확보하고 있지 않으면 큰 건물이라도 위험하다.
재(灰)처럼 무능화해서 밑거름이 되어야 만능화될 것이다.
崔益喆(神父·서울 齋會洞본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