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엇에 열중해지면 이성을 잃기가 예사다. 자유가 남용된 때도 그렇다. 새것, 새풍조에 도취되어도 비슷한 현상에 이르기 쉽다. 반항, 욕구불만, 문명발달의 과속(過速)에 심취(心醉)하면 그렇다. 최근 우리나라서 상영중인 「告白」이란 영화중의 여주인공의 사고방식이나 미국서 화제가 된 「히피」족도 그런 범주가 아닐까. 머리나 수염도 제멋대로 기르고 옷도 미관(美觀)을 무시한 「맘보」에서 도포(道袍) 형까지의 자유형이며 상극하고 해괴한 온갖 목거리 등. ▲제7회 총선거도 이젠 불과 4일, 이성을 잃은 무조건 당선을 향한 갖은 숨책의 운동. 아니 오히려 이성을 잃었다기 보다 너무도 악랄하고 지능적이 득표공작이 자행되는 듯한 보도와 소문들이기도 하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중상모략도 그렇다. 이성을 잃었으니 그럴법도 한 일이라고 넘겨 버려야 할지? 적어도 가톨릭신자들은 그렇지 않았길 바라야겠다. 고 장면 박사가 4·19 후의 정국혼란을 민주주의 이념대로만 해결하려던 「신념」이 아쉽다. 그 「성실성」이. ▲마이동풍(馬耳東風)이나 「노이로제」 무관심이란 말엔 비슷한 뜻이 있을 것이다. 오늘 선거 막바지의 유권자들이 이런 정황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부정부패도, 그렇게, 범법 행위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그럴수도 있다는 정당론(正當論)이다. 그런데 이같은 일들은 비단 일반사회적 병폐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전 어떤 모임에서 지도신부는 노발대발했다. 『여러분은 인간 이하다』 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말인가. 그러나 이 말을 듣고도 태연자약(?)하게 자세를 흐트리지 않은 것을 보고 노한 것은 신부요 그 신부가 되려 아연실색 했다. ▲공의회 이후 무수히 각성, 쇄신하자고 했고 그 정신 실천에 온갖 힘을 기울이자고 했다. 그러나 역시 무관심과 「태연자약」을 고수하고 있지 않은가? 새어 들어오는 물을 막고 뚝을 고쳐야 할 사람은 바로 「나」요 유권자이며 신자인 「나」들이다. 그리고 「성실」 그것이다. 이성을 잃으면 「인간이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