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대 국회의원 선거가 눈앞에 박두했다. 우리 신자들은 국민된 자격으로 이 총선거에 참가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가톨릭신자의 신분에서 신앙적인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 민주주의가 들어온지도 벌써 20여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이 스스로의 주권을 행사하기에 미흡(未洽)한 것이 많고 반성해야 할 것이 많다. 이 땅의 민주정치의 운명은 국민보다 오히려 정치인의 손에 매여있는 형편이다. 계몽적이며 교도적(敎導的)인 과정에 놓여있다.
국회는 이 사회의 질서를 만들고 국가의 예산을 세우고 정부를 감독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기관이다. 더구나 계몽기에 있는 민주국가에 있어서는 국민이 어떤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좌우된다. 그러기에 국민이 가진 선거권은 권리인 동시에 또한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의무이기도 하다. 국민의 대변자로 자처하여 입후보한 국회의원이 국민을 원망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국민은 제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을 원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거권은 신중히 행사하여야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슬기롭게 판단해야 한다.
교회는 위정자(爲政者)나 백성의 영혼을 구하는 초자연적 사명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또한 그 초자연적인 사명을 뒷받침하는 자선적인 사명을 함께 지니고 있다. 공산국가 안에서도 제 신앙만 돈독(敦篤)하면 구령할 수 있고 죄악의 질서와 박해 속에서 성인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면에 그로 인하여 많은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교회는 어떤 특정인의 구령을 그 사명으로 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태어날 모든 생명을 포함하는 전인류의 구령을 그 사명으로 하고 있다. 육신을 괴롭혀 그 영혼을 빼앗아오려는 것이 아니라 복된 육신생활 속에서 그 영혼을 기르고자 한다.
따라서 교회는 바른 육신생활을 가르치며 그 환경을 보살펴주고 있는 것이다. 죄악의 질서를 단죄(斷罪)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릇된 사상과 정치를 비판하고 잘못된 세속생활에 간섭할뿐 아니라 그런 불행을 사전(事前)에 방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신자는 국회의원을 뽑는데 있어서도 그 신앙이 고백(告白)되어 고백(告白)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돈을 받고 팔 수 없는 것과 같이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서도 안된다 우리는 제신앙을 은전에 판 유다스를 알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면서도 성부께 그 원수(怨讐)를 용서해달라고 기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때문이다. 제게 가까운 자를 사랑할줄 모르는 자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흠숭(欽崇)할 줄도 모르기 마련이다.
총선거를 앞둔 요즘 항간(巷間)에는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말들이 오가고 있다. 국회의원으로 뽑아 주니 그 은혜도 모르고 거만하더라느니 청탁(請託)을 들어주지 않더라느니 제 지방에 혜택이 없었다느니 선거때가 되어도 인사한번 안온다느니 술한잔도 없다느니 하는 웃지 못할 생각들이다.
심지어는 입후보자 가운데도 그런 잘못된 유권자들의 생각에 영합(迎合)하는 공약을 내걸고 표를 사는 자가 없지 않다. 돈과 사술(詐術)과 겉치레로 유원자를 사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뽑인다면 국민을 대변하고 그 복지(福祉)를 보장해야 할 자기의 의무감도 돈과 술에 팔아 넘기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국회의원은 결코 제 선거구민을 대변하는 지방민의 대표가 아니다. 국회는 결코 서로 제 지방에 큰 공장을 세우려고 싸우는 싸움판이 아니다. 국회는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질서를 세우고 정부를 감독하는 중요한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각 선거구에서 선거되지만 그 사명은 전체의 국민을 대변하고 그 복지를 보장하는데 있다. 제 선거구만 돌아다니며 투표권에 아부하는 자로서는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는 큰 사명을 띠고 있느 ㄴ것이다.
국회의원은 입법자(立法者)로서 또한 정부의 감독자로서이 충분한 지식을 가진 자라야 한다. 굳은 신념과 강한 의지를 지닌자라야 한다.
국민을 균등하게 사랑하고 그 복지를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대의(大義)에 사는 자라야 한다. 모든 국민이 복된 현세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고 제 영혼을 구할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라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정당(政黨)이 무엇이건 친분이 어떠하건 국회로 보내서는 안된다. 스스로 제 밭에 가라지를 심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사회의 모든 계층에 보내는 「메시지」 가운데서도 위정자(爲政者)들에게 『…믿고 신앙을 펴며 설교하는 자유와 하늼을 사랑하고 그를 흠숭하며 예배를 드리고 교회의 생명의 말씀을 전 인류에게 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쳤다. 우리는 상기(上記)한 사명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는 국민의 대표를 선출함으로써 유권자의 의무이며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임을 오늘 굳게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