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2일 敎皇 바오로 6世께서 全世界의 모든 善意의 人士들에게 보낸 歷史的이고, 劇的이며 同時에 感動的인 회칙 「諸民族 의 發展」(一名 人類의 發展)을 반포하신지 3월 28일이 그 一周年이다. 普通으로, 회칙은 가톨릭信者들에게 보내어지며 敎會안에 局張되었던 것이 前例다. 그러나 故 요한 23世의 회칙 「地上의 平和」로 始初된 全人類 相對의 敎皇의 對話와 勸告는 先敎皇의 回칙의 精神을 이어받은 회칙 「現代世界意章」이 회칙으로서는 最初의 것이고 이번 이 「諸民族의 發展」이 둘째번의 것이다. 그리고 이 3개의 회칙은 一員된 精神으로 이루어졌고 같은 問題를 다루었다는 點에서 分離할 수 없는 「三部作」과도 같은 회칙이라 하겠다.
이렇게 볼때, 우리는 第2次 「바티깐」 公議會와 따라서 敎皇께서는 얼마나 强烈하게 全人類의 連帶感을 통감하고 있느냐를 能히 理解할 수 있는 것이다. 「바티깐」 公議會도 敎皇도 가톨릭敎會와 信者들만의 것이 아니라 全人類의 것이다. 現代人이 直面하고 있는 모든 問題는 곧 우리들 그리스도信者들의 問題이며, 現代人의 즐거움과 苦痛, 希望과 공포도 같이 느끼며 같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敎會는 現代人의 各種問題를 진지하게 다루어 비록 即각的인 解決의 應答은 못 주더라도 敎會의 使命인 福音의 빛으로 비춤으로써 그 問題를 解決하려고 努力하고 있는 것이다.
회칙 『諸民族의 發展』이 반포된지 1年이 되었다. 1年間 韓國敎會는 敎皇聖下의 이 진지하고 哀切感마저 느끼게 하는 勸告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느냐? 「회칙」을 硏究하고 거기에 提示된 計劃, 그 精神을 具顯할 方案의 實踐은 그만 두고라도 研究檢討한적이라도 있었더냐? 本欄은 寡聞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氣味가 있었던것 같지 않음을 느낀다. 「主敎會議」에서도「聖職者」의 그 許多한 會合에서도 더구나 信者들 間에서도 이 회칙을 傳해받고 「로마」와 氣味相合한 아무런 흔적도 우리는 發見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칙만큼 우리에게 특히 現下韓國에서 切實한 회칙도 없음직 하면서도 또 우리들만큼 이 회칙을 外面하고 있는 나라도 없을 것 같다.
동 회칙은 現代世界 人類의 焦眉의 急務로 地域社會의 健全한 開發을 들고 있다. 人類의 幸福은 經濟向上만으로는 決斷코 이룩할 수 없음을 指摘하고 「人間의 發展」이야말로 全人類의 幸福, 同時에 이것이 福音精神의 具現임을 警告하고 있다.
國民所得의 向上, 國家經濟의 成長, 소위 近代化作業의 성취만으로는 만만코 복지국가를 이룩할 수 없으며 이런 努力이 비록 성취된다고 해도 「人間의 總體的이고 調和된 發展」에다 그러한 努力의 焦點을 두지 않는 限 그 물질적으로 거대하게 成長한 지역사회에서는 人間이 물질주의의 노예가 되는 비참외에 남을 것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當面한 두個의 방대한 課業수행을 위하여 全國民이 至大한 關心과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고 있다. 즉 그 하나는 「自主防衛」요, 또 다른 하나는 「經濟建設」이다. 이 두 課業이 다 우리로서는 숙명적으로 避치못할 절박한 問題임에 異論이 있을 수 없다. 한사코 성취해야할 生存의 問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째의 「自主防衛」 問題는 「回칙」과 直接的인 關聯도 없을뿐 아니라 여기서 論及할 時間도 없으므로 논급하지 않거니와 둘째의 問題 「經濟建設」은 回칙과도 至大한 關聯下에서 敎會가 수수방관할 수 없는 問題이며 또 時間的으로 방관하고 있을 수 없는 순간에 있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고 모든 機會를 포착하여 「回칙」의 精神을 祖國經濟再建에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地上 모든 善意의 人間들에게 보내진 圓칙이 이 나라의 善意의 人士들에게만 未知의 회칙으로, 또 外面된 회칙으로 남아있고 沒却되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임을 알아야 될 것이다. 敎會는 그리고 그리스도 信者들은 회칙의 精神을 받들어 經濟建設에 參與함은 勿論 그 精神을 이 땅에서도 살려야 하겠다.
「회칙」의 基本精神의 한 面은 「人間의 調和된 發展」이라 앞서 말했거니와 또 다른 한面은 人類의 連帶責任이다. 天主의 模像으로 創造된 우리의 兄弟들이 現在 이 時間에도 悲慘한 饑餓속에 고민하고 있다. 兄弟들이(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굶어죽었다면 그것은 곧 내가 그 兄弟를 殺人한 것이다. 兄弟를 饑餓에서 救해야 한다. 가톨릭 信者는 現代의 經濟·社會發展에 積極的으로 參加하여 正義와 사랑을 爲하여 싸워야 한다. 信者인 내가 人類의 繁榮과 世界의 平和를 爲하여 공헌해야 되며 또 하고 있다는 確信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 地域社會에서 個人的·社會的 全體生活의 眞福八端의 精神, 特히 淸貧의 精神이 침투되도록 해야 하겠다.
우리의 使徒職들은, 聖職이나 平信者를 莫論하고 天上의 市民으로만 있기를 固執하는 部類가 있는가 하면 한편 地上의 市民으로만 있기를 固執하는 部類도 많다. 양편다 一致를 범하는 過誤를 저지르고 있다. 宗敎生活을 單純히 祭典의 行事와 若干의 道德的 義務의 遂行에 不過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敎會의 精神을 잘못 理解하고 있는 것이다. 信仰과 日常生活과의 分離가 있을 수 없는 宗教生活이라면 地域社會의 經濟·社會問題에 敎會도 積極參與하여 그 발전에 先導的 使命을 다함으로 이 땅에서도 「회칙」의 精神을 살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