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가 끝나고 나서 여느 과도기에도 으례히 보이기 마련인 혼란과 불안이 소위 그리스도교 전통에 오래 젖은 국민들 사이에도 널리 퍼지고 아직 다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러한 차에 아마 연초엔가보다 세계적 신학자가 하나 영국에서 교회를 이탈했다는 소식은 교회내외를 시끄럽게 했다.
그의 이름은 챠를즈 데이비스 신부, 공의회 고문신학자이며 또 그의 저서로써 많은 사람에게 신앙을 발견 혹은 재발견케 해준 명석하고도 따뜻한 신학을 전개해 왔던 학자란다. 그의 공적 위치가 컸던 만큼 오해를 푼다는 의도아래 그는 교회이탈에 관한 성명을 기자회견, TV방송과 일요신문에 수기로써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자기의 이탈은 본질적으로 숙려끝에 도달한 내밀적이며 개인적 인격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다시 그는 세계에서의 그리스도교적 현존은 교회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교회의 제도적 구조에는 구현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하나의 제도로서의 로마 가톨릭교회를 믿지 못한다. 그렇다고 당면한 자기의 문제의 해결을 찾아볼 다른 교회도 존재치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그리스도교도로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다른사람 같으면 몰라도 「성사의 실재성」과 「성체중심의 공동체」를 그만치 명쾌하게 더없는 확신으로써 저술한 대이비스가 어떻게 성체적 단체인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교도로서 아직 더 행세할 수 있는건지 신학자가 아닌 우리에겐 그저 어리둥절 하기만 하다.
세상은 그의 이탈을 존 헨리 뉴먼의 영국 성공회에서의 개종과 비교는 못될망정 유사점을 볼랴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데이비스씨가 수녀출신의 어떤 미국인과 결혼 한다는 그의 계획을 그의 인간성의 약함으로 돌리고 보면 한가닥 연민의 정마저 간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신학자인 앙리 더 뤼밬 신부나 또 현대세계를 열중시키며 작고후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던진 파문이 아직 그칠줄 모르는 고생물학자였던 떼이야르 더 샤르댕 신부가 교권의 간섭에 대해서 배반이 아니라 깊은 사랑과 영웅적 인내로써 교회에의 충성과 자기의 학설의 조화를 꾀한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이 영국인에게 대해서 대단히 섭섭함을 금치 못하겠다.
金太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