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着化란 말을 가톨릭에 붙이면 언짢아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表現이야 어떻던 그런 努力이 이루어져야 했다고 생각한다.
75만을 헤아린다는 가톨릭信者中에 韓國의 가톨릭 聖地가 어딘지 또는 韓國에 福者가 몇분이나 되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自己에 向한 無關心은 信者뿐아니라 敎會를 관리하 는 聖職者에게도 있지 않은가 싶다. 우선 地方別로 그 고을에서 생긴 가톨릭의 來歷이나 殉敎者들의 行蹟정도 조사해서 가르쳐 주어야 예수를 자기 땅이나 피부를 통해 느끼리라 믿는다.
5年前엔가 「初代」란 連載記事를 取材하다가 우리나라의 殉敎史를 어설피나마 알게 되었다. 2回째 特輯에 「안드레아 金大建」을 쓰려고 史籍을 살피면서 나는 우리의 殉敎史가 빛나는 것이며 金大建 神父가 非凡한 人物이었음을 느꼈다. 韓國도 이미 열려있는 열매를 누워서 따먹은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며 가혹한 여러 차례의 迫害 속에서 가톨릭이란 나무를 심은 노력의 결과로 오늘 75만의 열매가 피고 있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두루마기를 입은 가톨릭의 「이미지」가 느껴졌고 우리 先祖의 것이란 密着感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뜻에서 敎會單位의 巡禮行事 같은 것이 마련돼 있으면 한다. 철따라 山이나 물을 찾아갈 것이 아니라 또 聖誕節이나 復活節이라 해서 무작정한 行樂을 즐길 것이 아니라 우리의 聖地라 할 수 있는 서울의 楊花津紀念聖堂이나 龍仁의 金大建 神父 石像을 찾아보는 것이 뜻이었다고 생각 한다. 그것은 다른 觀光을 겸해서도 좋은 일일 것 같다.
楊花津紀念聖堂은 殉敎地의 代表的터전이다. 이번 復活節 前後에 시복될 예정인 26位의 丙寅迫害 당시의 殉敎者를 모신 말하자면 韓國가톨릭의 墓地이다. 龍仁의 골배마실(京畿道 龍仁郡 내사면 南谷里)은 金大建 神父가 여섯살때 우리나라 최초의 迫害(어린 純祖대신 貞純妃가 黨派 싸움으로 利用)를 피하여 家族과 함께 숨었던 곳이다. 6年前에 等身大의 石像이 세워진 이 일대는 野遊會하기도 좋은 勝地이다.
이번 復活節前에 福者가 되리라던 26位의 諡福소식이 아직 없다니 섭섭한 일이다. 그뿐 아니라 韓國은 聖人 1位쯤가져야 土着的 기둥이 서리라 믿는다. 25세의 짧은 생애로 놀라운 行蹟을 남긴 金大建 신부가 聖人이되는 날부터 世界의 모든 나라가 두루마기를 입은 聖人을 모시게 되며 「한국」도 가톨릭的 歷史가 있는 나라로 인식되리라 믿는다.
南郁(한국일보編輯訓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