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選民) 의식이란 영광된 것이며 신념과 희망이긴 하나 인류역사를 불행으로 이끄는 큰 원인이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는 특히 「교만」이란 인간 최악의 원인이며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인류원조(元祖)의 실락원이나 유태인의 수난사가 웅변한다. 근년에 와서 미국을 괴롭히는 인종차별문제에서도 백인 크리스챤 가운데는 이 나쁜 의미의 선민사상이 진실을 왜곡하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데 부채질을 했다. ▲명예나 권세, 지위나 부귀를 누리는 사람들 가운데도 배차적 · 독선적이면서 일종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사나 성경은 이 유복(裕福)한 계층보다 가난하고 헐벗은 무리 · 인간을 편애(偏愛)에 가깝도록 사랑한다고 여러곳서 밝혔고 두둔했다. 오히려 「내편」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면 「내편」이 아닌 상대, 저주를 한 상대, 경고(警告)의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지도자와 부유한 자들이다. 그들은 천국 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처럼 어렵다고 했다. 지도자의 사명이 봉사에 있으며 인간존엄성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것은 천리(天理)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울 때 12제자를 먼저 간택했더나 베드루를 교황으로 뽑지 않았다. 지난 공의회 교령(敎令)중 으뜸인 교회헌장도 교회관을 세우는데 「교회의 현의」 「하느님의 백성」 그리고 「성직계급」의 순을 택했다. ▲민주정부의 설립도 그렇다.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선출하고 정부를 조직한다. 이 모든 기구나 지위 권력 인원(人員)은 백성과 국민을 위한 존재다. 봉사하기 위한 「헌신」의 서약이 전재다. 이 원리는 모든 적은 「구룹」에서 시작해서 정부나 교회까지 적용된다. ▲지도자의 사명은 막중하다. 신성하다. 공동선을 위한 사심없는 봉사를 요구한다. 지위에 따른 권위 · 명예 · 영광은 부수적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 생존권을 대소간에 맡는 것이다. 그러니 의무가 따른다는 것을 어떤 단체의 지도자든 각성해야 한다. 사회적이든 종교적이든 간에 백성들은 우매하지 않다. 그들의 선량(善良)은 지도자의 몰아적 봉사 겸손 속에서 지속하고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을 유지하는 길도 이것 뿐이다. 6·25를 맞으며 이렇게 지도자 상(像)을 되새겨 볼만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