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 여름 달밤이었다. 한 냉담 신자와 통금시간이 넘도록 진지한 담화가 술잔과 더불어 계속되다가 이윽고 발길을 집으로 들렸다. 도중 길가에 앉아 높은 언성이 오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나쳤다가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어서 다시 그들에게 돌아갔다. 싸우는 부부를 어떤 할머니가 말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할머니는 얼마전에 나한테 영세한 할머니다. 이웃에 살다보니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듣고 보니 시어머니와 며느리 싸움이다. 할머니가 부부에게 나를 우리신부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협상해 볼참으로 우선 이 세사람을 권해서 집으로 들어가게 했다. 내말에 선선히 응하는 것을 보고 협상이 가능하다 생각했다. 넷이 방에 들어가니까 백발노인 시어머니가 담배를 물고 대청에 버티고 있었다. 아들이 나를 소개하자 좀 당황하는 모양이다. 초면이라 내게 아들이 몇이냐고 묻는 知面 정도에 그치지 않고 예측한대로 며느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며느리에 대한 告訴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抗辯을 한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두 여인에게는 소귀에 염불 읽기다. 맞고소다. 오늘 삼차전쟁 인가보다. 아들은 중간에서 어쩔줄 모른다. 만만한 자기 아내를 달래다가 듣지 않아 화가 나서 이제는 완력에다 호소한다. 사태는 점점 더 험악해진다. 이제는 이웃 할머니나 나나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가 새벽 4시었다. 그후 그 아들을 종종 길에서 만났는데 퍽 반가워하며 불교 믿는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꼭 입교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모 자부관계는 어느 때나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이지만 가정외에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숱하다. 시모 아닌 시어머니가 덜된 시어머니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또 이들 등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惡意가 없을 수 없듯 없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관계는 모두가 利他的일 때 원만해지고 그 가정에는, 그 사회에는 평화와 행복이 깃든다. 「아가페」가 성할 것이다. 「아가페」가 근본적으로 이타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利己的인 것은 무엇이나 다 육체적인 사랑같이 「에로스」다. 자기 中心의 관심, 간섭, 활동을 지각없이 한다. 이것이 자신에게까지 유해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에로스」는 배타적이고 분산적이고 비타협적인데 비해 「아가페」는 포섭적, 융합적, 타협이다. 하나이신 천주에 그의 한 백성에는 「아가페」 하나 있을 뿐이다. 그 백성은 다 「아가피스트」다.
崔益喆(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