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탓으로 전력사정이 아주 나빠졌다. 이 지방에선 일반가정의 등화조차 四圍가 어둑 어둑해질 무렴에야 켜진다. 어느해치고 가뭄 걱정 안한 기억이 있던가. 가뭄에 이따른 물난리 또한 연중행사처럼 치른 해마다의 비극이었을 것이다. 요즘도 날씨는 노상 궂고 비가 질컥거려 이미 농사엔 별지장없이 지방으론 모도 거의 다 낸 모양이다. ▲늦은 歸路에 올라 한적한 시외 들길을 가면 캄캄한 벼논에서 맹꽁이가 무수히 운다. 어느새 비개인 깊은 밤하늘에도 마치 맹꽁이 울음에 몰려오듯한 무수한 별들이 흩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청천하늘에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엔 말썽도 많다.』는 아리랑 민요는 바로 우리네 조상의 가난한 생활체험에서 울어나온 절실한 푸텸이면서도 어딘가 흐뭇한 생활정서가 깃들인 노래가 아닌가. ▲못살고 가난한 푸념은 유구한 역사이래 일이백년 겪은 생활 내력이 아닐텐데, 이즘들어 사람들은 확실히 이 못산다는 현실에 대해 유달리 자각하고 있고 사직이나 온국민이 타개할 공통된 최대의 과제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즘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이런 국민가요가 보급 · 개창되고 있어 국민생활감정을 이런 현실적인 잘사는 방향, 그에대한 노력으로 고취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확실히 우선 잘사는 것이 최급선무라 하더라도 이건 마치 「남에 잘사는 것」 그것만이 우리게 있어 최대 최선의 선망의 的인 것 같은 느낌은 없는지? 우리에게 유구한 역사전통과 고유한 문화가 있었다는 걸 자인할 때 그 내적 정신적인 면에선 그렇게 못살았다고만도 할 수 없다면 『한번 잘 살아보자』는 이 말은 철저히 현실적 물질적인 것만 뜻하는게 아닐까? ▲실천성 없는 관념으로만 끝날 무기력 현실기피의 이상론이 우리가 진작 타기할 현상이었다면 현실을 위한 현실추구 이 역시 우리가 배격할 저속한 현실주의가 아닐지 모르겠다. 뚜렷한 가치관 내지 보다 높은 목적의식을 전제하지 않는 현실추구가 셜과적으로 무질서한 사회혼란의 원인이며 우리 자신 그 피해의 사례를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적어도 그 시대적인 理念을 조금이라도 들어내고 있을 국민가요가 이러한 현실추구만의 노골적인 _歌라면 밤새도록 의미없이 개걸대는 맹꽁이 울음보다 조금도 듣기 좋을 것 없는 참말 질색할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