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인심은 말할 수 없게 각박해졌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의 인심도 옛날하고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소신학생때 지도신부님께서 타이르신 말씀이 문득 생각난다.
『이제 너희들이 신부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딱한 얘기를 하면서 좀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그럴 때 도와줄 수 있으면 다시 받을 생각 말고 주어야지 준 다음에는 그만이라는 것을 알아두어라!』고.
그랬었건만 정에 약한 존재가 사제들인지라 어떻게 해서든지 한 신자의 딱한 처지를 보면 아니 도와주고는 배겨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사제들의 공통점인가 한다. 많은 신부들이 사기꾼들의 농간에 속고 있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설마하면서 또 속는 것이다.
내가 신부가 되어서 첫 임지에 갔을때 구걸을 거의 강요하는 많은 거짓 신자들을 만났었다. 점점 나에게도 꾀가 생겨서 몇번, 영세했소? 또는 견진도 받았소? 그러면 어느 신부한테 견진 받았소? 등등 몇가지를 물어보게 되었었는데도 후에 동기신부들이 모여서 이런 말이 나오면 나도 나도 새신부들만 찾아가서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속은 것이었다. 이렇게 속는 것은 처음 얼마동안이고 좀 지나면 지능적인 사기에 걸려든다. 이때는 상대가 확실한 신자이고 주일마다 성체를 영하는 비교적 열심하게 보이는 사람들이다.
몇해동안 사제생활을 하고나면 안면도 넓어지고 도와주고자하는 신자도 만나게 된다. 그래서 「텔레비죤」도 가져보게 되고 과히 궁핍하지 않게 된다. 이런 때 신자가 찾아와서 사정을 늘어놓는다.
『우리 자식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두달 후에 곗돈타면 갚아드릴테니 좀…』 또는 『신부님 야단났읍니다. 내일 모래면 틀림없이 돈이 나오는데 좀…』는 『곧 미국을 가야겠는데 집문서 받아두시고 좀…』 등등.
수단은 한정 없고 금액은 커진다. 다 딱한 일이다. 신부한테 그런 돈이 있을 턱이 없다. 될만한 집에 전화를 걸고 부탁을 한다. 그 뿐아니라 신자를 믿는 신부이기에 아무런 답보도 사양하고 돌려준다. 그 후는 불문가지이다. 또 속았나? 속았나가 아니라 확실히 속은 것이다. 들려줄 일이 난감하다. 얼마 있으면 돌려준 쪽에서 여러 말이 들려온다. 신부 믿고 준 것이니까 신부가 어떻게 해서라도… 당연한 말이다. 빚쟁이 신부의 신세로 타락한다. 이제는 연거푸 여러 사람에게 손을 내밀게 되고 그것도 만성이 되면 어려울 것 조금도 없다. 그렇게 되면 일반신자들 사이에 여러가지 말이 오간다.
『그 신부 참 돈 잘 쓰거던…』 『아마 친정이 잘사는 집인가 봐』 이런 말이야 아무 상관없지만 얼마가 지나면 이상한 말까지 듣게 된다.
『그 신부 무슨 사업한다면서』 『신부가 성무나 집행하면 되지 무슨 사업은 사업이야』
사제생활에 있어 결정적인 타격이다. 이런 말일수록 점점 새끼를 치면서 빨리도 퍼져간다. 이런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쳐 보다가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정말 무슨 사업에 손을 대보는 것이다. 신부가 손을 대기 전에 벌써 기회를 찾고 있는 신자가 있는 것이다.
『신부님 이일이 꼭 될텐데 자금만 좀 융통해 주시면 틀림없이…』
『신부님 이러이러한 일이 있는데 같이 안해 보시렵니까?』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많고 많은 오해에서 풀려날 수 있고 한 몫 잡으면 교회를 위해서 사용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세상이 그렇게 신부처럼 단순 할 수 있을가?
자연히 신자와 신부사이에는 간격이 멀어지고 교회는 세상을 닮아가고 만다. 과연 보기 싫은 세상이며 보기 싫은 사제상이며 보기 싫은 신자군이다.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계신 예수께서 그냥 보고만 계실 수 있겠는지… 일년에 두주간 자색보로 가려지는 십자가에서 이러한 생각도 가져본다.
김승훈(감멜수도원지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