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과학발달은 경이적이다 무서운 핵(核)의 힘, 인공위성 등 그런데 이와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인공태아 생육 등이다. 후자는 특히 무신론 과학자에 의해 더욱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와함께 우리나라서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소련의 파블로브에 의한 「신경 생리학」은 맑스주의의 인류정복에 박차를 가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보다 고차적인 신경활동」에 관한 논문이 「맑스주의의 철학」이 되고 기둥이 된 것이다. ▲「신은 죽었다」는 도전은 니체와 샬뜨르에 의해 그리고 의미는 다르지마는 일부 프로테스탄 급진 신학자에 의해서도 창도되고 20세기 현대인, 특히 지성인을 매혹하고 있다. 이 무서운 파도는 강건너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나라에까지 미쳐왓다고 지난 8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발표한 교수 · 박사 · 언론인 · 유학생 등 194명의 간첩사건은 더욱 충격적이다. ▲현대인은 종교를 고전적(古典的)이며 묵은 것으로 단정하고 자본주의 페습에 시달린 지식인은 새것에도 한껏 현혹되고 있다. 그같은 풍조는 새것 → 과학 → 물질 → 무신론의 길에 휩싸인채 새것을, 자본주의와의 대치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계와 인생은 무의미한가? 그리하여 인생은 종말에로 치닫고 허무안에 돌진하는가? 『까뮤는 인생을 철학으로 풀지않고 문학적 괴변으로 얼버무렸다.』고 시그몬드가 말했다. 그리고 「부조리」(不條理)로 단정했다. 인생의 종말이 이세상서 끄친다면 고통의 의의는 없다. 극단적 향락과 이기주의만이 보람차다. 질서야 파괴되든 말든. ▲서구(西歐)에 있는 한국인이 공산에 가담한 것은 분명히 이 나라의 오랜 자본주의적 폐습과 부정 · 부폐가 부채질을 했을 것이다. 정치 · 사회의 불안정과 학비조달의 어려움은 충분한 유혹의 기회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공산 · 사회주의 사상은 이곳처럼 무자비한 투쟁을 앞세우지 않으니. 「크리스티아니슴」적 풍습 · 전통과 사고(思考)에서 양성(讓成)된 「휴매니즘」이 바탕이다. ▲겨레의 생활향상, 70년대의 통일을 전제한 근대화운동은 부정 · 부폐속에서나 정신적 철학적 바탕 없는 물질주의적 추구만으론 그 성취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파블로브의 『세계발전에 대한 신념과 창조주에 대한 신앙은 일치하는가』란 질문에 『일반적으로 종교에 대한 나의 태도가 부정적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불신앙이 단점이다』고 한 것을 은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