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야 어떠했던 너무도 오래토록 그를 찾지 못했다는 것과 이렇게 날은 더운데 손바닥만한 봉창으로 뚫린 멍한 하늘만 쳐다보며 얼마나 답답해 했을까 생각하며 그 병실 아닌 병실을 찾아갔었다. 이윽고 집마당에 들어선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다직도 창백했던 얼굴은 몰라볼 정도로 태양에 그을려 있었고 침대 옆에는 목발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듣자니 그는 하반신을 조금씩 움질일 수 있고 목발을 의지해서 매일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무언가 신생의 기대로 빛나고 있는 듯 싶었다. 수년전 이 청년이 소구루마에 실려 대학병원에 왔을때는 확실히 쓰레기통에 버릴 수 밖에 없었던 문자 그대로 유기품이었다.
사돈네 팔촌도 아닌 그녀가 대소변을 받아내며 악취 투성이인 옷을 갈아입히며 먹을 것을 가져다 끓여주고 가곤했던 가다리나, 이곳에 옮긴 후로 틈만나면 눈이오나 비가오나 어느 부모형제도 찾아줄 길 없는 이 어둡고 냄새나는 방을 찾아보고 돌아간 무수한 발걸음을 회상해 본다. 연꽃처럼 오수(汚水)에 뿌리를 박았으되 오히려 더렵혀지지 않는 숨은 꽃이었다. 이방인의 교사 파스칼은 병상에서 그의 간호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뇌는 기독교의 참 모습이다. 기독교도는 언제나 고뇌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아가페」(愛餐)의눈물이 있는 가슴에는 언제나 괴롭고 수고로운 자의 무수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다.
돌이켜 우리들이 선용해야 할 세월과 노력과 돈이 조그마한 마음의 빈곤 때문에 혹시나 낭비된 적은 없었을까? 돈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가난이 아닐까? 사랑의 눈길이 향해진 곳에는 실로 풍요한 창조가능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청정무구한 무상의 꿈이다. 우리가 「아가페」(사랑)의 신 앞에 만들어 가야할 그날 그날의 작품이 다작이 되지 않도록 마음과 경건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주께서는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할 것이다. 『내가 진실히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그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니라』라고.
임기석(大建大神學校 職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