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제65회 임시국회는 그동안 말썽을 일으켜 오면 향토예비군설치법안을 신민당 소속의원이 없는 의사당에서 통과시켰다. 이와 같은 변칙통과는 이미 여러번 있었던 전례에 이어 예사로운 일로 되어가고 있다. 민주국가의 체신이 무너지는 불행한 일들이다. 아마도 정치인들의 애국심이나 민주의식 속에 크게 잘못된 것이 있는 것 같다.
무장공비가 휴전선을 넘어 수도 서울에까지 집단으로 침입해왔다는 사실은 확실히 온 국민을 놀라게 하였다. 6.25의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우리국민들에게는 공비의 침입을 막는다는 것이 경제개발이나 도시계획에 비길 수 없는 중요한 의무로 되어있다. 물론 반공의 근본적 문제는 경제성장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비의 침입은 이미 「이데오로기」의 전쟁이 아닌 이유없는 살육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강도인 것과 같이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살육과 공포를 일삼는 공비와 공산주의의 침공이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은 향토예비군설치법의 전면적 개정을 서둘게 되었던 것이다.
이미 1961년 12월에 전문 6개조로 된 조잡한 향토예비군설치법이 제정·공포되었다. 그 목적은 군무를 마친 예비역장병을 조직훈련 하여 향토방위와 병참선경비 및 후방지역피해통제의 임무를 지우자는데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제정된 새 향토예비군설치법은 제2조에서 그 임무를 주로 무장공비소탕에 두고 있다. 즉 『적(敵) 또는 반국가 단체의 지령을 받고 무기를 소지한자의 침투가 있거나 그 우려가 있는 지역 안에서 적 또는 무장공비를 소멸하고 그 공격으로 인한 피해의 예방과 응급복구 및 중요시설과 병참선의 경비 등에 관한 임무를 수행한다』로 되어있다.
또한 그 조직과 지휘권을 명백히 하고 엄한 벌칙을 둔 전16개조에 달하는 비교적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다. 더구나 제8조1·2항에서는 예비군의 임무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대통령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주민의 소개·피난 또는 교통·조명·출입의 제한 등을 명령하거나 그 임무수행에 지장이 있는 주민의 재산을 제거할 수 있게 하였고 또한 작전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작전지역을 출입하는 자를 검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외에 또 주목할 만한 것으로서 동원된 예비군대원에 대한 실비변상규정이 있고 정치운동에 이용하지 못한다는 규정이었다. 예비군의 지휘권은 국방부장관이 관장케되어 있으나 필요에 따라 그 지역의 경찰서장에게 위임 또는 재위임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예비군은 무장할 수 있으되 그 무기의 사용은 적 또는 무장공비를 소멸하는 전투시에만 사용할 수있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규정들이 공비소탕을 위해 필요한 규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쥐잡으려다 독을 깨는 격이 되어서는 안될 뿐아니라 약주고 병주는 격이 되어서도 아니 된다. 그러므로 그 운용에 있어서 세심한 주의와 폐단의 사전 방지가 있어야할 것으로 본다. 첫째로 이 땅에 공비의 침공을 방지하고 그 침공에 대비한 만전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데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그 방법에 있어서 꼭 향토예비군을 설치해야 하느냐에 관해서는 비판되어야할 문제들이 있다고 본다. 더구나 그 법안을 변칙통과까지 시켜야 했느냐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미 전통과 체계가 확립되어 있는 군인·경찰이었으니 그 기구를 확장함으로써 이 땅에 거듭되는 시행착오를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번 향군법의 강행이 어떤 정치인의 고집이나 위신을 지키려는 하잖은 이유에서 된 것이라면 그 결과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둘째는 향군의 전투 또는 방위정신에 관한 문제이다. 예비군은 어디까지나 예비군이다. 정규군대가 있고 경찰이 있고 제3선에 향군이 있는 셈이 된다. 더구나 공비침공의 방지 및 소멸에 관한 일체의 임무를 도맡은 것도 아니다. 국방장관과 군대와 경찰의 지휘하에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체제하에서 창의적이며 자발적인 작전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세째는 국가 재정상의 문제이다. 향군은 출동시에 한하여 실비변상을 하도록 되어 있으니 국가 예산 면에서는 부담이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로인해 생길 민폐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네째는 무장에 관한 문제이다. 무기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에 따라 흉기도 되고 이기(利器)도 되는 것이다. 과연 1년에 20일의 훈련을 가지고 그 무기를 선용하고 민폐나 탈선행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으로 교육해낼 수 있겠느냐는 문제이다. 다섯째는 향군의 정예분자로 자처할 사람들의 미래상에 관한 문제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직장단위의 향군조직에서 빠진 지역단위별 향군의 구성원에 관한 문제이다. 그 대부분이 직장없는 청년들이라면, 사회의 낙오자로 자처하는 청년들이라면, 자학과 비굴감에 사로잡혀 사는 청년들이라면 그 권세(?)와 무기를 어디로 돌릴 것인가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오늘까지 우리가 겪어온 일부정치인들의 생리로 보아 과연 향군을 정치운동에 이용할 수 없다는 규정을 어느정도 성실히 지켜 줄 것이냐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 여러가지 문제점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늦어도 향군설치와 동시에 그 대책이 세심히 검토되고 그 구체적 방안이 국민에게 법제정에 앞서 주지되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우리의 적은 공비만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모든 사상과 그 침략행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