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중 일정한 기간 휴가를 가져야 한다. 인간의 능력에는 스스로 그 한계가 있는 것이므로 체력은 물론 정신력에 이르기까지 무한정한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혹한이나 혹서의 계절은 물론 그외에도 현대인은 복잡한 사회와 문명이란 이기의 노예가 되어 항시 소음과 신경의 극한자극 속에 살아야 하는 터이므로 옛날의 연중 목가적(牧歌的)인 생활을 형락하던 시대와는 생활조건이 근본적으로 그 모상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휴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 또 휴가를 주어 일정한 기간 쉬게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내가 쉬고 싶고 또 쉬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도 쉬고싶고 또 귀어야 한다.
금년은 정치적인 혼란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의아닌 장기휴업을 가지게 되었지마는 하계나 동계에 학교가 휴가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일반시민은 휴가를 모르고 살고 노동은 중단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교대로라도 그 소중한 기계와 공장이 계속 돌아가야 하며 연중 하루도 쉬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심신의 피로를 호소하고 자신을 위하여는 휴가의 필요를 역설한다. 그반면 피고용인의 휴가는 나태로 오해하고 그것이 곧 빈곤의 최대 원인으로 생각하는 수가 많다. 자기의 귀중한 기계는 연중 몇차례 가동을 정지하고 수리와 보수가 필요할진데 노동자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이 점은 형제애 내지 인간애를 구령의 길로 신앙하는 그리스도 신자에 있어서는 더욱 심사숙고가 요청된다. 주일도 없고 파공날도 모르게 고용인을 혹사하여 그 이윤으로 비록 성당을 짓고 교회사업에 봉납한다고 해도 천주님의 가상은 커녕 힐책을 면치 못할 것이다.
피고용형제들에게 유급휴가를 주어 그들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여위케 하고 자기영신생활로의 귀향과 가족들의 단란의 중심이 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그리스도신자의 본분인 것이다.
이것은 사회학이 통계학적인 결과를 들어 가르치는 바 휴가는 생산증대를 가져오는 요인이 된다든가 혹은 노동청 당국의 유급휴가제도의 강력한 지시가 있다고 해서가 아니라 실로 인간의 기본권리이며 따라서 「래눔 노바룸」과 또 최근 「인류의 발전」 회칙을 통하여 가르치는 그리스도교회의 정신인 것이다.
이러한 정신과 제도는 신진서구 각국에서는 제도화되고 상식화되어 있는 터이다. 또 자유노동이나 개인적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가장들에 있어서도 1년 가정계획 중에 반드시 본인은 물론 가족의 휴가를 미리 고려에 넣어 가족과 더불어 「인간다운 생활」의 기회를 마련함이 가장으로서의 타당한 의무인 것이다. 인간은 기도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휴가의 시간도 가져야 한다. 휴가는 기도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이다. 소화 데레사는 『더욱더 잘 기도하기 위해서 충분한 휴식과 영양을 취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정신은 맑고 건전한 성신으로 천주님과의 대담에 임해야 된다는 말이다. 건전한 기도와 관상생활을 위하여 주교, 신부, 수도자들은 물론 교우들도 휴가를 가져야 하겠다. 주교나 신부가 혹서를 피해 휴가를 미나셔야 한다면 다음 기회는 복사나 전교회장도 휴가를 떠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애덕」의 실천이 아니겠는가?
휴가를 가진다고 하는 말은 모든 생활을 중단하는 말은 아니다. 일정한 기간 해태해도 좋다는 말은 더욱 아니다. 휴가중이라도 우리 영혼은 항상 주님과 더불어 「깨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휴가중일지라도 우리의 육신은 필요한 음식을 요구한다.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혼도 마찬가지다. 결국 인간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영혼을 떼어버린 인간은 인간이 아니요 일개의 육괴(肉塊)에 불과한 것이다.
휴가중은 1년간 세속일에 너무 골몰하여 고독하게 버려뒀던 우리의 영혼으로 귀향하자고 했다.
우리는 이 기회에 피정하는 기회를 마련함도 가할 것이며 반드시 단체를 조직하지 않더래도 혼자 조용한 시골 본당을 찾아가 그 성당 주변에서 묵상과 영적 독서로 완전한 하루 혹은 이들을 지내는 것이 좋겠다. 또 가족들과 더불어 지내며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깥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독점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것도 이 기회에 부모들이 할 일이라 하겠다.
끝으로 특히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금년은 학생들이 하계휴가중 농촌지역사회 봉사에 대한 계획도 마련되기 전에 극히 부자연스럽게 휴가로 들어가 대부분 각자 지방으로 분산되고 말았지마는 지방에 돌아간 학생들은 물론 도시 거주 학생들도 과거와 같은 팔도강산 유람식이 소위 「학생봉사대」 운동은 청산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농촌봉사 활동이 일제시대와 같은 민족운동 내지 감상적인 안일한 운동이 되어서는 안돼겠다. 더욱 학생농촌봉사라는 특권적인 명분 아래 고민하는 농촌민들에게 해를 끼쳐서는 더욱 안돼겠다. 학생농촌운동은 단순한 노력제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과오며 지역사회는 경제적인 소득성장에만 치중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발전은 인간의 발전으로 시작되고 또 그것만이 그 목적임을 학생제군은 명심해야겠다. 지난 3월 28일자 교황 바오로 6세 성하의 회칙을 다시한번 정독하고 학생들은 우선 농촌고민의 소재를 관찰하고 농촌형제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이해하여야 하겠다. 학생운동의 주안이 「일」에 있을 수 없고 「사람」에 있다는 것을 잊으서는 안돼겠다. 일부 성직자들은 농촌본당돕기운동을 시작했다 한다. 농촌본당의 고민이 어디에 있는지 그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학생들의 할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