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가 한창인 17·8년전 대구에서 將校候補교육을 받았다. 별명이 「바스콤」이란 지휘관이 있었다. 「惡漢바스콤」에서 딴 별명인데 惡해서가 아니라 그 영화배우와 체구가 닮았기 때문이다.
「바스콤」은 朝禮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뭔지아냐』하고 나서는 『아(知)는 것이다』했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또 가장 무서운 것이 뭔지 아냐』며 『모르는 것이다』했다.
敎育部隊의 지휘관으로서는 당연한 訓示였지만 그가 곧잘 將校의 긍지를 「장교의 금지」라고 하는 따위로 「誤發」해서 속으로 웃군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바스콤」의 誤發의 애교는 머리에서 사라지고 『아는 것이 무섭다』는 그의 力說이 형태를 달리해서 자주 회상된다. 그것은 「아는 것」이 나쁘게 또는 나쁜 사람에게 이용될 때 더욱 무서워진다는 사실이다.
「莊子」에 盜척 篇이 있다. 척교라는 말이 있듯이 菜나라의 柳척은 초나라의 莊교와 함께 中國史의 대표적 大盜이다. 우리가 「도척같은 놈」이라고 발음하는 것도 「도적(盜賊)같은 놈」의 强音이 아니라 「盜척같은 놈」에서 온것 같다.
盜척 篇의 내용은 이러하다-孔子는 盗척의 兄 柳下季와 친구였다. 부하 9천명을 거느리고 天下를 휩쓸고 다니는 도적 척을 아우로 두면서 善導못하는 柳下季를 나무라며 孔子는 자기가 직접만나서 타일러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下季는 척의 성미가 하도 과해서 누구의 타이름도 받지 않는다며 孔子를 만류했다. 孔子는 만류를 뿌리치고 제자 類回와 子貢을 左右에 帶同, 盜척이 占據하고 있는 太山으로 갔다.
도척은 사람의 肝을 회로해서 먹고 있다가 孔子의 來訪을 듣고 소리 질렀다.
『그자는 魯나라의 협잡군 孔丘라는 작자가 아니냐』 盜척은 謁者(안내자)에게 『속히 떠나지 않으면 肝을 도려내어 점심반찬에 보태리라고 일러라』했다.
孔子는 이 전갈을 듣고도 『장군의 義를 듣고 온 장군의 형 下季의 친구입니다. 한번이라도 장군의 발아래 엎드리고 싶습니다』고 면담을 재청했다. 겨우 면회가 승낙이 됐다. 孔子는 두번 절하고 말했다. 『나는 듣건대 무릇 天下에는 세 가지 德이 있다고 합니다. 나면서부터 長구麗類하여 老少貴賤이 함께 따름이 上德이오. 지혜와 능력이 勝함이 中德이오. 勇氣와 決斷力이 뛰어나 百軍을 거느림이 下德이라 합니다. 이 세가지 德中 한 가지만 갖추어도 王侯라 일컫기에 넉넉한데 장군은 세가지를 한몸에 지녔읍니다.
만일 장군이 盜에서 道로 옮길 생각이 있다면 내가 吳·越·齊·盜· 宋·衛·晋·초의 모든 나라에 使者로가서 장군을 위한 大城을 짓겠읍니다.』했다.
그러나 盜척은 크게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협잡군 丘야. 입으로 利를 내세워 꼬이는 자가 더 도적이다. 너는 王侯에서 선비까지 속여 먹는 놈인데 어찌하여 너를 盜丘라하지 않고 나를 盜척이라고 하느냐』 盜척은 孔子의 子路가 衛나라임금을 죽이려다 실패한 일, 모든 權座에 앉았던 諸侯들의 非위 또한 人間에게 權力富貴名道가 얼마나 盧安한 것인가를 古今의 實例를 들어 떠든 다음 孔子에게 너는 人間에게서 盜慾을 훔치려는 도적이라고 대갈하였다. 이에 孔子는 도망치듯 돌아갔다.
盜척의 입을 빌려 道學者들이 흔히 범하는 虛僞 外飾을 비꼬은 莊子의 이 揷話에는 人間 復權的 구석도 엿보여 苦笑롭다. 역시 아는 것이 무섭다 할까.
南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