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일동안 무더위에 시달리면서 래디오뉴스를 귀담아 듣지 않았으나 귀를 스쳐가는 몇가지 뉴스에는 귀가 쏠렸다.
어느 기관에선가 自由勞動者에 對해서 勞賃을 引上해서 日本과의 隔差를 없애도록 提示했다 하며 또 勤勞者들에게 有給休暇를 實施토록 示達했다는 것이다. 참 기특한 얘긴듯 하다. 우리나라도 이런데서 近代化해가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왜 이제 새삼스럽게 보도되었을까. 勤勞基準法에도 있을 것이고 보면 當然한 일들인데.
이러한 具體的인 점에 대해서 敎會는 이미 本世紀以來 교황의 입을 통해 勤勞者의 처우 改善을 부르짖어왔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우리나라 勞賃이 日本과의 比較해서 엄청나게 싸서 保稅加工이란게 盛業을 이루고 日本책들이 한국에서 組版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책얘기가 나와서 말이지 日本에서도 出版事業을 하고있는 어떤 기관장이 한국에서의 勞賃과 生産코스트가 싼 것을 奇貨로 모욕적인 푸대접을 하는 것이 퍽 서운했던 적이 있었다. 너 아니라도 더 싼 原稿料로 얼마든지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말투다. 바로 그 理由로 오히려 日本만큼 稿料를 많이 주어서 文筆과 著述活動을 길러주었어야 공로가 될 말이었겠다. 얘기는 비단 여기 뿐만 아니다. 南美 등地의 大地主의 橫暴와 착취는 一國民 뿐만 아니라 南美大陸을 不安定과 未開發 상태에 몰아넣고 있다.
이번에 교황 바오로 6世는 그의 여섯번째 回勅을 반포하였는데 여기서는 從來의 社會回勅이 再確認되었지만 교황은 특히 開發國에 對한 人類의 連帶責任을 강조햇으며 그 語調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直說法으로써 簡明한 文章에다가 간곡하고도 强要하듯 혹은 豫言的인 호소를 섞어가며 때로는 論爭的인 예리한 論調로 때로는 世界史의 파리사이從을 비꼬듯한 特異한 것이다. 「地上의 平和」 以來 人類는 얼마나 진보했는지 우리는 묻고싶지 않다.
그보다도 敎會內에서 國民經濟를 좀먹을 수 있는 敎會의 遊休財産 그 管理者들의 不正 혹은 過剰蓄財 敎會機關從業員들에게 對한 勞動組合結成反對 혹은 封建時代的 家僕主義 등 이런 일들은 당장은 아니라도 半世紀後에는 敎會를 고독한 어머니로 만든다. 修身齊家平天下式으로 세계의 平和를 생각하기 전에 내 집안부터 바로 잡는 것이 急先務다. 넓은 世界보다 한국 社會에서 한국 敎會內서 내 敎區, 내 본당에서 「開發」하는 實質的 努力은 심각한 當爲라고 한다면 큰 論理의 飛躍은 아닐 것이다. 「開發」이란 새로운 이름의 「平和」는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人類의 進步」를 바라지 않는거나 다름없는 것이 아닐까.
金太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