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후진성 탈피와 근대화 지향은 서구문명 도입을 더욱 촉구하고 구체화해가고 있다. 그런데 20세기 한국의 발달은 19세기 말부터의 서구문명 도입에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고 기여도(寄與度)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철학 등 인문과학, 수학 등 물리화학, 문학 등 예술 전반에 걸쳤고 생활 · 사고(思考)에서 관습과 유행에까지 이른다. ▲유행, 특히 여자의 의상과 화장하면 그 본거지가 으례히 불란서이고 「빠리」임을 잘들 알고 있다. 그런데 근년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이 한국여자들은 거의가 영화배우인줄 착각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었다. 왜냐면 유행의 본거지 「빠리」에서도 배우나 여급(女給) 등 인기직업 여성들만이 화장을 하고 요염하리만큼 화려한 옷들을 입지, 일반 여성이나 가정부들은 좀처럼 「루즈」칠을 않고 옷도 수수하거나 점잖게 입기 때문이다. ▲「라인강의 기적」을 낳게 한 것은 독일대학생들의 옷차림이 웅변적으로 예시(豫示)한다고 한다. 그들은 새로 산 헐값의 옷 팔꿈치와 무릎 등에 가죽을 대서 입는 성실성으로 일관한 생활관념의 국민들이다. ▲우리가 배운 서양문명은 화려하고 고귀한 것들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서구문명도 입을 「수박 겉 핥기」식으로 하고 이 「화려」와 「고귀」함의 근저(根底)가 무엇인지를 간과(看過(하고 이 모든 것이 인생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추구하는 것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신」(神)과 인간관계이며 「크리스챤니즘」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고, 말로는 『신은 죽었고 인간은 다시 났다』 했고 꺄뮤는 인생을 「부조리」(不條理)로 요약하면서 신을 부정하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신과의 대결」이요 바로 「신의 추구」(追求)다. 신과의 대결이 두절되지 않는 상태는 절망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성 아구스띠누스가 말한 「인간의 불안은 신의 부르심」의 현상이다. ▲경제향상 도상의 국민관심 가운데 「신」은 없다고 역사가 증명한다. 그러나 근대화 5개년 수행에 정신적 지주(支柱)가 절대적 요건이라 생각하는 지도자와 학자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다행이다. 인간이 신을 정복하고 인간만능을 구가(驅歌)한다는 현대인의 착각을 없애고 「참」에의 관심을 갖게하며 추구케 해야겠다. 「나는 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는 「나」의 착각을 버리고 「안일」에서도 탈피해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