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적어도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을 믿고 싶다. 늘 아름다운 마음을 닦고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얼굴에 분명 아름다운 빛을 볼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안에 길렀던 미움이 있는 사람, 불안이 있는 사람, 평온을 잃어버린 사람은 반드시 그 얼굴에 나타나는 법이다. 마음에 깊이 감사하고 있는 사람이 어찌 그 얼굴에 그 눈동자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랴! 마음은 언제나 조형예술가의 솜씨를 지닌다. 무릇 우리들이 수업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차원에 있어서의 자기 창조에 불외하다. 여기엔 각심의 「노고」와 임 향한 일편단심이 따른다. 자연에 낭비가 없드시 공들여 주어지지 않는 은총이란 없다. 성자의 머리 위에는 그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후광이 따른다 한다. 정신적인 것이 넘쳐 외부로 발산하는 것이 아닐까? 자유야말로 존재를 변형시켜 창조하는 것이다. 흔히들 불가피라는 말을 쓴다. 분명 우리들이 거기서 빠져나갈 수 없는 극한 상황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깊이 반성해 보면 학대받고 무시된 잃어버린 자유가 구실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폭군의 발 아래 유린되어 있지 않는가 한다. 우리들이 아름다운 얼굴을 지닐 수 없었다면 그것은 우리탓이 아닐까? 나갈 때마다 거울 앞에 그다지도 자주 서듯이 나날이 우리의 心顔을 닦아간다면 어느새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 이것은 결코 「미스 유니버스」의 미를 의미하진 않는다.
나는 심사관들이 자로 재서 계산해낸 미는 미의 껍데기지 참된 미는 아니라고 본다. 미는 유형에 있지 않고 유일성에 있기 때문이다. 말없이 그 얼굴을 바라보면 무언가 고요한 평화, 가을 샘물과 같은 맑은 사랑 꿈과 고무에 가까운 것을 느낄 때 조차 잇다. 나는 젊은 날을 다 보낸 노인의 얼굴을 그 사람의 필생의 기념비와 같은 것이라 믿는다. 거기엔 노고와 생의 체념과 예지가 부각되어 있었다.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의 얼굴은 고요히 바라보노라면 인생의 온갖 의미가 원문 그대로의 글로 되어 있음을 본다. 나는 생의 창가를 부르고 싶어진다.
임기석(大建大神學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