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福者 24位에의 諡福을 계기로 「바티깐」의 舊守性을 다시 느끼게 된다.
「바티깐」을 「세계서 가장 작은 나라」 정도로는 알았으나 數字를 찾아보고 새삼 놀랐다. 총면적 4·4헥타이니 미터法으로 환산하면 0.04平方킬로미터이다. 22萬平方킬로인 한반도와는 비길바 못되고 성루 鍾路區의 2백50分의1이다. 한마디로 國民校운동장만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작은 獨立國이 6억의 信者가 分住하는 世界各國에 영향하는 힘이란 어느 强大國보다 크다.
前敎皇 요한 23世때부터 이 「작은 强大國」에도 改革의 懿風이 불기시작-基督敎 여러 教派開의 敎會 再一致 世界平和를 위한 積極的參與 教會制度의 現代化 등이 世界의 골목마다에 波及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舊守性이 물씬풍기는 것은 그 強大함 때문일까?
上申된 福者位의 審議를 50年이상 검토한다는 「바티깐」의 慣例는 그만치 聖位의 부여에 신중을 기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 實例가 形式化되어 아무 검토도 없이 10年에 한번정도 誤題에 오르내리는 實例로보면 신중을 기하려던 원뜻은 사라지고 그저 「무심한 權威」로 退化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26位에의 諡福이 순교한지 百여년만에 되었다해서만이 아니다. 이 諡福은 1918年 빠리外邦傳敎會가 審議해서 된 것인데 만일 한국이 稟議했더라면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 까닭은 諡福裁判이 끝나기까지의 50餘年間 막대한 費用과 外交力이 注入되어야하기 때문이라 전한다. 아무리 가난하고 國力이 약한 나라의 백성이더라도 爲主致命의 흔적이 뚜렷하면 諡福을 결정하는 것이 깨끗한 가톨릭的風土일터인데 이상하다. 심지어는 稟議對象者의 遺骨遺物한 조각을 金·銀 寶物函에 넣어서 심의관계 성직자에 보내야하며 外交的인 접촉이 게을러서는 안된다니 市井의 무슨 감투따기 따위와 비기는 비난을 어떻게 막겠는가.
지나간 이야기로 끝낼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金大建 神父의 聖人位를 추진할 課題가 남아있다 우리나라 보다 敎會식구가 3.40萬적은 日本에는 福者 2백5位에 聖人 26位나 있다. 또 우리의 殉敎史가 결코 日本의 殉敎史에 뒤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金力이나 國力이 약하다고 諡位가 부진하다면 말이 안된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주제넘은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金大建 神父의 「爲主致命」의 평생은 日本의 어느 聖人에 못지 않을 만치 濃度가 짙고 무결했다고 생각한다.
「바티깐」 市에 어둠이 깃들면 石造建物의 숲사이를 누비며 다니는 口傳者가 있다- 그는 世界의 聖人·福者들의 聖蹟을 이야기로 꾸며 노래하듯 다닌다는 것이다. 참으로 牧歌的인 화폭같은 風物을 연상한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金大建 神父의 聖蹟이 朗송되게 하자면 그에게 口傅費를 줘야한다. 이것이 아름다운 風景속의 現實이다. 이제는 남의 마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으로 우리의 손으로 聖人과 福者를 이룩할 때가 온것 같다. 한국교회도 自立한지 이미 26년인 것이다.
南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