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 사회는 극도로 혼란하고 불안한 것 같다. 일종의 위기의식마저 금할 수 없게 한다. 「메스콤」을 통하여 불어 일으키는 세계와 사회으 혼란상(混亂相)을 살펴보면 국제정세가 그러하고 국내로는 정치적 혼미, 경제적 불안, 물가의 상승 등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원인(遠因)들도 있거니와 직접적으로는 최근 매일같이 보도되는 각종 범죄다. 특히 연소자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살인, 유괴, 약취 등 흉악범이 있고 작당행패에서 공갈, 협박 등 구타 · 폭행 소위 「깡패」로 부르는 사회불안 조성행위들은 가이 무법, 내지 무정부의 광야를 달리는 감이 있다. 그리고 또 정신착란으로 일으켜지는 범죄와 비록 범죄라고는 규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정규를 일탈한 많은 정신질환적 사회현상들이 날로 만연되어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첫째, 최근 경남 진주에서 있었던 「춘우(春宇)군 유괴 살해 사건」은 최근에 일어난 이러한 범죄의 전형적인 것이며 특색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많은 문젯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흉악무도한 범행이 20대의 청년들에 의하여 저질러졌고 범행의 동기가 「돈이 필요해서」라는 단순한 이유이며 살해한 동기가 「탄로될 것 같아」 내 생명을 연장할려는데 있었고 살해의 수법이 청소년들이 쉽게 생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수인」으로 잘 훈련된 무리들처럼 쉽게 처리되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인간을 벌레처럼 쉽게 죽여없애버리는 수법은 오늘도 각 영화관에, 「래디오」에서 또 신문에서 「무법자」라는 이름아래 교육시키고 있으며 청소년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탄복하고 있는 것이다.
성인(成人)들은 이런 교육을 하며 「더욱더 잘 살기 위한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근대화」란 무엇이냐는 문제는 다각도로 해석을 내릴 수 있겠으나 그 근본은 인간의 존엄성을 실감하고 그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일진데 죄없는 어린 생명을 어쩌면 이렇게 쉽게, 또 잔인하게 죽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근대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우리들의 자녀들은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의 휴일을 가족들과 단란하게 보내려도 갈 곳이 없다고들 호소한다. 사실이다. 명승 · 고적 · 유원지 · 해수욕장 할 것 없이 사람들이 갈만한 곳은 「깡패」라고 불리우는 무법자들로 꽉 찼다. 기차 · 버스 등 교통기관 내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작당의 힘 폭력이 유일한 무기다. 힘을 신앙하는 무리들이다. 힘이 절대요, 힘 앞에는 질서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무법, 무뢰(無賴), 잔혹행위들이 결코 그들 청소년들의 본성이 아니며 성인(成人) 사회에 대한 반항이요 항거라 하겠다. 그들의 불만을 그들이 쉽게 배워 통쾌감마져 느껴지는 무법자 「실리즈」에서 매일처럼 배우고 동경해온 바가 아니냐. 그들을 나무라기 전에 기성세대는 반성해야 하겠다. 그들 「깡패」의 행패를 나무라는 어른들은 『너희들은 부모도 없고, 너희들 집에는 어른도 없느냐?』고 호령한다. 그들은 어른도 없고 그들은 부모도 없는 것이다. 그들의 부모가 그들을 버리고 어른들이 그들을 돌보지 않고 잘살기 위한 사회는 그들에게 「무법자의 사회와 그 영웅적인 쾌감」을 가르쳐 주고 있지 않았던가. 그들의 행패는 실로 어른들의 무책임한 「애고이즘」의 결과로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사회 각 방면의 불안의식 또는 불만감의 상승은 그 정도의 차는 있을망정 현대인을 정신 · 신경질환으로 이끄는 것 같다.
신경질환을 현대병(現代病) 혹은 문명병(文明病)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정신안정제가 의가(醫家)들의 처방에는 의래 따르기 마련이다. 정신안정제는 현대생활의 필수품이라고도 한다. 현대라는 또는 문명이란 이름아래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어떻든 병임에는 틀림이 없고 병은 정상이 아님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 불안이 극도에 달하면 최근 경북 · 학산부락에서 있었던 집단살해라는 비참한 결과를 빚어내게 마련인 것이다. 한 청년이 발작적으로 남녀노유 할 것 없이 순식간에 7명이나 살해하는 사건은 앞으로도 없으리라 아무도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가 이처럼 혼란되어가면 금후 이러한 불행이 얼마든지 속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몇가지 점을 현 사회의 혼란상의 대표적인 것으로 살펴보면 그 원인을 대총 『잘살기 위하여 무리하게라도 돈을 작만하겠다』는 것과 부모들의 자녀방치 내지 포기, 기성세대의 「애고이즘」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가 우리정부가 그리고 정치인들이 한결같이 「근대화」를 부르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근대화」의 촛점을 물질문명에 두었기 때문이요 국가시책을 물질적 유족(裕足)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근대화는 첫째 천주님이 천주님의 모상으로 만들어 놓은 그 인간의 존엄성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며 「더 잘 사는 길」은 경제성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오로 6세께서 밝히신 「인간의 균형있는 발전」과 「전 인간 전인류의 평등한 형제적인 발전」에 있음을 우리는 다시한번 명심해야 할 때가 바로 이때인 것이다. 우리는 이 극도의 사회혼란을 바로잡기 위하여 「냉장고 같은 차거운 방」과 T· V의 환상 앞을 떠나 대중들에게로 돌아가야 하겠다.
「홋고 신부」의 예수님의 작은 자매 · 작은 형제들의 청빈과 우애(友愛)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가톨릭신자의 사회보앗가 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가톨릭정신이며 우리의 본분인 것이다. 우리는 부모들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가. 혹은 벌써 포기하고 있지 않는가. 반성하자.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정으로 돌아가자. 잘 사는 길은 무리하게 현대적인 생활품을 갖추는 것이 아니고 천주님의 뜻대로 자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