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오후 퇴근길에서였다. 집으로 향한 길목 고무신 가게 앞에 서 나는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대학을 갖나왔을 듯싶은 젊은 여성과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부인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귀가 끌린 때문이다.
고무신 하나를 놓고 어머니는 무척 간곡히 사이사이 엄숙한 명령의 빛까지 섞인 어투로 딸에게 신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품질과 색깔과 모양새며 모두가 마음에 꼭 드는 물건임을 되풀이 설명해 주었다.
허지만 딸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모양-고개를 몇번이나 외로 틀더니 자꾸만 시선이 다른 고무신으로 쏠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고른 고무신을 샀는지 아니면 딸이 새로 자기 마음에 드는 신을 샀는지 그 뒤의 일을 나는 모른다.
초면의 모녀가 고무신 고르는 광경을 넋놓고 바라보고 섰다면 이도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라 계면쩍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해서 이쯤에서 발길을 옮겼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어머니는 자기의 의견에 순순히 쫓아주지 않는 딸이 괘씸히 생각되고, 딸로서는 자기가 신을 고무신이니 꼭 자기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야 할텐데 하고, 강권하는 어머니에게 불복과 원망의 눈길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표정을 읽은 사실이다.
대수롭지 않은 이 광경을 머리속에 담고 발길을 옮기며 나는 엉뚱하게도 내 한 친구의 일을 다시 회상해야만했다.
꽤나 착실하다는 칭찬을 받던 젊은이 었는데. 아리따운 女人과 오랜 사귐으로 장래를 약속하고 주위의 선망을 받던 친구가 부모의 반대로 사랑의 결실이 불가능하게 되자 급기야 그 女人의 순결을 짓밟아 하나의 연약한 女人의 가슴에 풀리지 않는 멍울을 안겨주고 만 사실.
이와 비슷한 남의 이야기야 얼마나 많은가? 신문 3면에 깔리는 활자속에서 부모의 반대로 맺어지지 않는 사랑을 통곡하며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는 사건들이.
우리는 여기에서 고무신 가게의 일을 다시한번 같이 생각해 봐야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고무신을 고르는 눈은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가 딸보다 나을 것이 분명하다. 많이 신어보아 품질이 어느 것이 좋고 나쁜가를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경험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데 이 일은 복잡성이 있다. 색깔이나 모양새에 있어 딸의 마음에 드는 것이 따로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신어보아 자기의 발에 맞고 안맞음을 가장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어머니가 아닌 딸인 것이다.
기여이 딸과 어머니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생기고 이것이 가엾은 젊은이와 복된 가정의 평화를 깨는 요인이되고 나아가서 사회에 까지 커다란 문제점을 제시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대답이 결코 간단할 수만은 없다. 어머니의 뜻대로 라면 딸의 발에 잘 안맞는 신을 살 염려가 많으며 반대로 딸의 마음대로 버려둔다면 품질을 속는 일이 있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고무신을 신는 주인공은 어머니가 아닌 딸이란 점이다. 그리고 복잡성을 띤 문제의 해결도 바로 이 기초 방정식에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영양가가 높은 음식도 식성에 맞지 않으면 헛일이다. 오랜 경험으로 아무리 사람 보는 눈이 높은 부모의 마음에는 상대라도 본인의 뜻에 맞을는지는 미지수에 지나지 않는다. 최후의 결정 그리고 최적의 척도는 역시 당사자 이외의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결혼은 젊은이 본인들이 하는 것이요, 부모의 지나친 강권과 강압은 절대 금물이다.
헌데 이 말에 반론을 드는 부모님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보는 눈은 나이 먹은 부모들이 낫지 않느냐고. 어느 정도까지의 보편타당한 가지-이에 대한 보는 눈은 말할 것도 없이 부모님들이 철부지 자녀들 보다 낫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정도란 그 「정도」가 따로 있는 것이요, 그 이상의 범위에 대해서는 아무리 노련한 부모의 경험론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넓은 영역이 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여기에서 아쉬워지는 것이 부모님과 자녀들 사이의 대화다. 부모님들의 보는 눈이 그 노련한 힘이 자녀들에게 이식되도록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눠 두었으면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사전(事前)」이란 철저한 단서가 붙어야 한다. 고무신 가게에 와서까지 이렇궁 저렇궁 모녀간의 옥신각신이 벌어져서야 되겠는가? 신을 사러 가기 전에 충분한 조언을 아끼지말 것이다.
그러한 뒤에 고무신 가게에는 딸이 혼자 가도록 하라. 딸은 조용히 어머님의 조언을 상기하면서 보다 알맞은 신을 알뜰히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남을 두고 이어온 부모와 자녀 사이의 오밀 조밀한 대화-이것만이 우리가 당면한 강권과 자유의 틈바구니에서 벌어지는 숱한 비극을 막는 유일한 방파제가 되리라 믿는다.
결정장에는 본인 혼자서 나서라! 그리고 완전한 자유의사에서 화살을 뽑아라! 물론 오랜날을 두고 나눠온 부모님과의 대화를 상기하면서.
김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