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신문보도에 불과하므로 그 자세한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일이나 8月 27日字 제582호 본보 보도에 의하면 「로마」 성청을 대폭 개편한다고 한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교회의 「현대화」를 「모또」로 제반 문제를 현대화 하는 굵은 선을 그어 놓고 공의회를 끝마친지가 바로 엇그제 일이고 보면 이번 「로마」 성청의 개편 단안은 교회 현대화이 첫 발걸음을 구체적으로 대딛인 것으로 해석되어 교회 구성의 한 因子를 이루는 우리로서 크게 환영하여 마지 않는다.
교회를 세속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구성요소로 보나,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으로 보나 교회도 하나의 인간단체요 따라서 다스리고 다스려지는 정부와 그 백성 관계를 떠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정부형태는 교회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실제에 있어선 그 발전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청개편 전문위원회」의 핀나 몬시뇰이 밝혔듯이 16세기에 이미 그 골자가 갖추어져 20세기 초엽에 개편을 보았다는 성청의 현행행정기구로서 어떻게 지금가지 20세기의 초음속 시대를 걸어왔는가 하는 의아심마저 가지게 된다.
「로마」 성청은 그 실에 있어서 16세기나 20세기 초에 비로소, 꼴을 갖춘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현대적으로 「로마」 성청으로 번역은 하고 있지만 그 원어인 「꾸리아 로마나」는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로마 宮庭廳」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하여튼 그 기원은 이러하다. 성 베드로께서 로마제국 元老員 뿌렌스를 개종시키고 그 元老員宮庭制度를 본받아 교회 수반宮을 세웠다고 한다. 교세가 날로 발전하면서 교황궁도 인원수가 늘게되고 그 관장하는 일도 고아범하게 되는 동시에 교회는 중세기의 봉건제도라는 역사적 과정을 어차피 걷게 됨으로써 그행정제도도 궁중의 행정제도를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20세기를 전후하여 「뜨리덴띠노」, 제1차 「바티깐」 양 공의회를 통하여 교회가 어느정도 「근대화」 했다고는 하나 교리서, 교회법과 더불어 교회 행정기구는 당시이 반교회 사상에 대비하는 자기방위의 호교적 태도를 굳혀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주의 체제는 세기의 특징이요, 상직처럼 되어 있는 현대에서 둘레를 성으로 높이 쌓고 자기 폐쇄 속에 들어앉은 宮庭制度는 시대감각에서 너무나 멀게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교회의 행정제도를 민주주의 체제를 취하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국가는 국민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통치제도가 있게 마련이므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만, 교회는 주권이 먼저 위에 있고 백성이 교화되어 들어와 단체를 이루게 되므로 그 형성과정이 본질상 속칭 민주주의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교회 행정제도에 대하여 희구해온 것은 자기 개방이었다. 그러기에 고(故) 요한 23세께서 교회는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소집한다고 개회선언을 하셨을 때, 온 세계는 가슴을 조여가며 그 귀추를 주시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은 뜻에서 이번 바오로 6세의 「성청개편」 단안은 온 세계 여망에 응해주신 은혜요, 교회발전의 획기적인 새 역사를 터놓은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여기 저기 아무데라도 다 통한다. 『로마가 일단 결정하면 일은 다 끝났다』는 단일 선언문으로 만사를 해결하지 않으려고 각국 주교들을 성청의 각료급에 중임하시리라 한다. 「민주화」라 해서 환영하기 보다는 교회의 자기개방이란 방향으로 해석하고 싶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흉금을 털어놓고 서로 대화해 가며 의노나는데 자기 개방이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하나의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랑의 개념은 믿음의 반대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하여 유대를 굳히는 데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20세기를 전후한 「뜨리덴띠노」, 제1차 「바티깐」 두 공의회가 교리서, 교회법, 행정기구 등을 「가지변론」의 정신으로 교회를 근대화 하였다면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자기개방」이라는 태도로 현세계에 임함으로써 교회를 현대화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뜻에서 「성청기구개편」의 단안은 새 세계에로이 거일보를 대딛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바티깐」 공의회와 더불어 우리는 그간 너무도 빈번히 각성과 쇄신을 강조했다. 무엇을 반성했고 쇄신했을까? 이제 전세계 신자의 교황인 바오로 6세는 우리에게 각성과 쇄신이 길과 방법을 또하나 더 제시했다. 그것은 보편화이며 공동성이요 단체성이며 현대적응이다. 한국의 교구와 본당도 인물 중심 · 권위 · 형식 · 배타 · 안일주의가 아닌 천주의 백성과 인류이 구원에 봉사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성청 개편의 정신을 받아들여 과감히 그리고 유효하고 성실히 개혁돼야 한다. 즉 투철한 형제애와 사명감을 바탕한 조속한 이같은 실천만이 한국의 그리스도교회의 실존적 의의를 빛낼 것이며 이길만이 한국교회를 성장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