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話
空港에서 「리무진」이란 合乘을 타고 시내 각 호텔로 가는 차칸에서 앞에 앉았던 나는 막오르는 안면있는 분에게 인사를 했다. 異國都市에서 만난 반가움으로 내 소리가 높았는지도 모른다. 그이는 퍽으나 당황한듯 잠깐 미국까지 다니러 간다는 뜻의 대답을 하고 총총이 안으로 들어갓다. 드디어 어떤 큰 호텔 앞에서 정차하자 그이는 통로가에 앉은 나를 지나면서도 한마디 인사도 없이 내려서 사라졌다.
第2話
그후 몇일이 지나서 나는 다른 航路에 있었다. 비행시간이 길어서 영화가 機內에서 상영된다.
나는 별 흥미가 없어서 성무일과책을 끄내어 신공을 드렸다.
드디어 영화는 끝나고 나도 신공을 마치고 책을 치웠다. 그러자 옆에 앉았던 어떤 외국인 신자가 말을 건낸다. 우리는 서로 목적지의 소개를 했다. 다음은 아까 읽으시던 책이 성무일과 같은데 신부냐는 그의 질문이다.
「시이트」에서의 나는 「로만칼러」를 벗은 차림이었으니까. 그분은 자기 아들을 예스회 계통의 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또 CFM의 「멤버」라는 것을 밝혔다. 우리는 그나라에서의 敎會와 平信徒活動 「크루실료스」운동 등 여러가지 화제가 진진하게 着陸地까지 심심치 않게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空港에서 그 분과 헤어져서 市內를 向하는 途中 이 지난 두가지 가장 平凡한 장면을 두고 나대로의 집념에 잠겼다. 한국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광신적인 티도 없지는 않지만 자기의 信仰表示에 솔직하며 용감하다는 定評이다. 그와는 대조로 가톨릭 信者는 그의 社會生活에 있어서 어딘가 신자라는 표시를 피하고 신앙에 관한 話題를 敬遠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더우기 이것은 知識人層에 강하다는 것이다. 하기야 多元的社會에서 少數派에 屬하는 가톨릭신자가 信仰公開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祭衣房의 가톨리시즘」이 되어서는 안된다. 언제까지나 이런 가톨리시즘을 信奉해서야 되겠나. 아마도 「神의 죽음」은 여기서 시작된지도 모른다. 「하이드 파크」에 설만한 용기를 갖고 우리도 世界에 對해서 우리의 신앙을 開放해도 손해날 것은 없지 않을까.
金泰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