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케네디는 黙珠를 꼭 쥐고 숨졌다. 그는 지난 20數年동안 일곱번이나 자기家族의 非命앞에서 黙珠를 뜨겁게 쥐었다. 그리고 15回를 자기一家의 橫厄앞에서 默珠를 입에 대었다. 또한 매일같이 美國內外의 指導者 親知에서 이름 모를 異民族에 이르기까지의 不當한 厄運앞에서 黙球를 가슴에 대었다. 그 黙珠는 그의 목숨위에 얹힌 채 「알링턴」에 묻혔다. 더 무거운 兄의 黙珠가 묻힌 바로 옆이었다.
1941年, 長女로즈마리·케네디가 精神薄弱者收容所에 들어간 것이 케네디家의 가까운 厄運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거의 每年 때로는 1年에 두 번씩 큰 兇報에 온家族이 수심에 싸여야 했다. 2年後에는 존·케네디가 솔로몬群島近海에서 PT109가 두 동강이 나는 바람에 重傷을 입었고 그 이듬해는 長男죠셉·케네디 2世가 B24爆擊機를 조종하다 유럽에서 戰死했고 또 같은 해에 次女의 남편이 英軍將校로 從軍中 白耳其에서 壞死했다.
2次大戰이 끝나 不幸은 멎은듯 했으나 48년 5월 4년전 男便을 잃은 次女가 飛行機事故로 佛蘭西에서 死亡하는가하면 6년 후에는 3男 로버트·케네디의 장인장모가 함께 專用機의 墜落으로 死亡했다.
그 이듬해인 56년에는 재클린·케네디가 死座, 61년엔 家長 죠셉·케네디翁이 半身不隨(現在까지) 63년엔 재클린·케네디가 次男生後 2일만에 잃었다.
둘째 아들을 잃은지 3개월만에 존·케네디 大統領은 暗殺되고 4男 에드워드·케네디도 飛行機추락사고로 목숨은 건졌으나 첫 不幸을 겪었다.
66년에는 3男 로버트·케네디의 妻男이 비행기 추락으로 死亡했고 妻조카가 自動車사고로 重傷을 입었고 妻의 올케가 食事中 쇠고기가 목에 걸려 질식死했다.
그리고 지난 6일의 로버트·케네디 자신의 被殺이다.
가지가 많은 나무일수록 바람이 세다. 또한 그 人物들이 社會의 上層에 위치할수록 바람이 세다. 케네디 3兄弟 모두가 大美國의 大統領 자리에 앉았거나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大케네디 家族에 부딪는 바람이 얼마나 거세리라는 짐작은 간다.
그러나 이 世紀의 不幸에서 우리는 한 家族의 의연한 자세가 보여준 人間의 슬기를 그 不幸의 濃度만치 느낀다. 兄이 쓸어지면 동생이 그 자리에 가 선다. 동생이 쓸어지면 또 그 동생이 그 자리에 가 선다. 이것은 어떤 使命을 느낀 人間의 가장 높은 理性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殉敎와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그 兄들이 만졌듯이 살아남은 에드워드·케네디가 黙珠를 만지고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식만은 戰場에 보내지 않으려던 高官을 섬긴 過去가 있는 우리로서는 더 뼈저리게 케네디家의 무거운 黙珠를 생각하며 敬意를 표한다.
南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