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몇번의 聖月이 첨례표 위를 지나간다. 그러나 많은 敎友들에게 그것은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극을 받는 小數의 敎友數마저 해마다 더 줄어만 간다.
노들江邊 白沙場
모래마다 피흘린 자국!
萬古풍상 비바람 속에서
몇번 지워진 그 事綠이냐만은,
지우고 지워도 殉敎의 꽃이 피던 韓國敎會에,
이제는 營養失調病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크리스찬 生活은 更新되지 않으면 안되겠다.
更新의 길은 가까운데 있다. 그것은 이왕 크리스챤이 되었으면 크리스챤 生活을 하는 일이다. 그 본보기는 먼데 있지 않고, 바로 우리 福者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殉敎者가 되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하던 크리스챤 生活을 본받자는 것 분이다. 우리의 初代敎會는 千九百年前에 있던 것이 아니라, 바로 百餘年前에 있었다.
그들은 人間最高至善의 理想을 「天主實義」에서 찾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었고, 하느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百姓」다운 일을 하다가 죽을 수 있었다. 크리스챤 生活이란 죽도록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社會生活을 하는것 - 그것 밖에 없다. 사랑하려면 알아야 되고, 알면 알수록 죽도록 사랑하게 된다. 이것은 萬事에 적용되는 지극히 平凡한 眞理이다.
따라서 工夫없는 信心이란 벼락으로 배운 外國語 미천이나 마찬가지다. 하루 덮어 두면 하루만큼 退步하고, 3년만 덮어두면 거의 장님에 가까워진다. 우리 信仰生活은 이래서 營養失調에 걸린다.
우리는 이것을 限死코 막아야겠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나 決心 따위만으로 간단히 되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구체적 方法이 있고 實踐이 있어야 한다.
그 方法中에서, 사람을 이끄는데 迫力이 있고, 일을 하는데 熱中할 수 있는 指導者를 양성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데는 20世紀 後半期 가톨릭 復興運動上 하나의 奇蹟이라고도 볼 수 있는 「꾸르실료」運動도 한번 해볼만한 일이었는데, 多幸히도 최근에 이 運動이 韓國에도 흡수되었다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꾸르실료」運動이란 約20年前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全世界를 휩쓸고 있는 크리스찬 生活 短期修練會의 뜻이다. 이 運動의 聖果가 얼마나 奇蹟的인가는 1966年 5月 現 敎皇 聖父께서 全世界 「꾸르실료」 修鍊者 「로마」大會 參加者에게, 『그리스도와 敎會와 敎皇은 그대들만 믿고 있다.』고 宣言하신 것으로도 짐작이 간다. 이 運動은 우연한 인연으로 「필립핀」 兄弟들에 依하여 韓國에 전파되어 今年 5月 4日 서울에서 第1回 「꾸르실료」를 가졌었다. 그리고 그들의 再次의 來韓 指導下에 今年 8月 27日 完全히 韓國말과 韓國사람으로 된 「꾸르실료」가 33人의 새 指導者를 배출시켰다.
그 結果 서울大敎區에는 지난 9月 17日 「꾸르실료」 敎區事務處와 指導者學校의 正式 發足을 보아 이 運動이 서울에서 本格化 되었고 또한 仁川 原州 淸州 光州敎區에서도 아직은 非公式的이나마 이 運動에 參與하는 聖職者와 平信者를 가지고 있다.
이 運動의 특색은 한마디로 크리스찬 生活의 改造 · 更新에 있다. 그것은 마리아 軍團이나 JOC.나, CFM(가톨릭가정운동)이나 SVP(성원선시오회) 같은 또 하나의 「가톨릭 액숀」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團體에 뛰어들어가서나, 自己本堂에서나, 발벗고 나서서 일할 일꾼을 만드는 운동, 다시말해서 잠자는 크리스챤으로 하여금 어둠의 옷을 벗고 光明의 갑옷을 입게 만드는 指導者 練成운동이다.
福者들의 피흘린 얼이 되살아나게 「베드루 · 바오로」 殉敎千9百週年을 기념하는 「信仰의 해」인 1967年 福者聖月에 世紀의 驚異인 이 「꾸르실료」 運動이 韓國에 심어져 싹돋았음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며 同時에 이 運動이 하루 바삐 全國에 번져 우리 크리스찬 生活 更新을 위한 「노들江邊의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여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