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라던가 이런 명절날을 맞을때 간절해지는 것이 역시 고향이다.
『명절을 쇠러 고향에!』
『省墓를 하러 고향에!』
얼마나 정감을 불러 일으키는 말이며 정경인가. 이런때야말로 失鄕民의 적막을 뼈저리게 되씹는다.
자식이 成年한 나이에 든 탓인지 고향 산천도 산천이려니와 부모님 山所에 벌초마저도 못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멘다.
나의 아버지만은 일찌기 고향 德源 수도원 묘지에 모셨거니와 이북에 홀로 남아 계시던 어머니는 그 종신을 누가 했는지 무덤이나 지었는지 조차 모른다.
더우기나 공산당에게 납치되어간 나의 오직 하나였던 형(具 갑열 신부)에 이르러서는 시베리아 어느 유형장에 내쳐졌는지 상상도 미칠 수가 없다.
이렇듯 연상을 해나가느라면 仙境같은 분도회 수도원 전경이며 거기 群仙圖 같던 신부 · 수사들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그리고 고향에 머물러 있을 순박한 교우형제들의 그 어두운 얼굴들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나는 저 百년전 박해에도 비길 북한 공산당 치하의 우리교회와 오늘 이 자유의 땅속에서의 나의 신앙생활을 비교해 보고 참괴를 금치 못한다.
실상 해방후 북한의 우리 교회는 자랑할만 하다. 주교님을 비롯해 신부, 수사, 수녀들이 수10명 공산당에게 납치되어 갔으나 한 사람의 배교자를 안내었고 10만 교우들이 있었으나 公的으로는 공산당에 굴복하고 협력한 흔적이 하나도 없다.
북한 공산당의 전국민조직인 「祖國統一民主主義民族戰線」이란 단체에도 天道敎 佛敎 「프로테스탄」들은 가담했지만 우리 가톨릭만은 없다.
이러한 현상은 저 東歐羅巴의 교회나 中共 치하 교회에서 가짜 주교나 신부가 나오고 또 공산정권 예속하에 들어간 교회와 비교할 때 우리교회의 영웅성은 자랑할만 하다. 이는 우리 선조들의 자발적인 福音導入과 殉敎의 맥박이 오늘 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反證하는 게 되리라.
끝으로 딴 얘기가 되지만 흔히 統一이라면 남한의 정치적 경제적 유약성과 散亂을 들어 공산당에게 패배할 것을 우려하고 실망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나는 통일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서 정치력 보다도 경제력 보다도 종교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믿는 사람이다.
즉 오늘이라도 分斷의 장벽이 무너진다면 北韓 방방곡곡을 뒤흔들 성당의 종소리가 공산당에게 예속되고 마비되었던 종포들의 영혼의 갈증과 인간성을 해방하고 회복시키느냐에 달려있다고 보며 우리의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
具常(詩人 · 本社論說委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