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고 어렵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믿기가 일쑤다. 어느 시대 어느 누구든 어려움을 겪지 않고 지난 역사가 없으련만 오늘날 특히 교회가 현대사회 인간 생활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근심하고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元祖가 낙원에서 축출당한 원인인 절대자를 능가하려는 바로 그것이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소위 지성적이라는 無神論的탐구(교만)일수록 비수하지 않을까? 質量 모두에서 말이다. 위기에 부닥칠 때마다 요한 교황이나 바오로 교황님은 거의 어김없이 어린이들에게 기구를 요청한다. 詩篇에도 『당신의 반대자들 때문에 어린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미를 길이 마련하셨으니 이는 원수와 적을 물리치기 위함이니다』고 했다.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인류구원이란 절대적 사건들이 분명 어린이들에 의해 덕을 본 사실들임을 알 수 있다. 부부싸움도 젖먹이가 화해시키고, 기둥뿌리를 거꾸로 뒤엎을듯하던 아버지의 노여움도 귀염둥이 덕분에 무마되는 일이 茶飯事다. ▲지난 5월 중순 「샬뜨르」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가 보살피는 百合보육원 원아 20명이 姓과 本貫을 정하고 법률적 한 가족을 이룰 수 있도록 지방법원에 소송을 했다. 눈물겨운 일이 아닌가? 샛빨간 갓난것을 길거리에 누더기로 싸서 버렸으니 이름도 성도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20의 생명이다. 버렸을 때는 울음소리밖에 내지 못한 핏덩어리지만 눈깜박할 사이에 不可侵의 으젓한 인격자로 자란다. 무서운 일이다. 얼마나 애처로운 사연이 그중에 있었으랴만. ▲대구 동촌에 「SOS어린이마을」이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고아원이다. 그러나 흔히 있는 집단 수용식 고아원이 아니고 1백여명이 8·9명씩 남녀·연령별로 평생을 바친 獨身者를 어머니로 완전한 한 가정으로 「스위트 홈」을 指向하여 사는 곳이다. 이들은 외국인 2백만명이 1년 1천2백원씩(1인당)을 모아 보내주는 돈으로 자라고 있다. 분명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눠가진 어린것들이다. 그들을 돕는 사람 2백만명 중 한국인은 불과 6명이란다. 정말 부끄럽다. 의식해야할 위기상황의 하나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