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입김과 새파랗게 질린 시간들의 연속에서 별을 헤여오기도 어언 4년!…
그러니까 내가 스무살 때 아직 사회에 물들지 않고 젊음이 발아하기도 전에 무지에서 오는 단 한번의 잘못으로 사형수가 된지도 어언 네해…
사방이 회벽으로 둘러싸인 음울한 감방에서 심장의 일부분을 나날이 싸늘하게 냉각시켜오는 「체인」에 얽매여 별빛만이 스며드는 창살을 잡고 과거를 회상하면 먼저 회합의 오열에서 오는 눈물이 양 볼을 적십니다. 너무나도 짧고 거칠었던 지난날…선량이라는 것을 행하지 못하고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야 한다니… 참말로 인생의 무상함이 한없이 서글퍼 집니다. 설령 『대가 간다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느 농부의 막내동이로 태어나 형들과 누님의 사랑 속에 철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교때 군에 입대, 만기제대후 학업에 매진하려다 그만 이렇게 시공을 가로쪼갠 일생을 마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여물지 않고 설익었을망정 저대로의 이상은 컸읍니다. 명예와 권세부귀영화로 인생을 「앤죠이」한다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 와선 그것이 곡해였고 병들고 몸부림치는 허영심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神을 부인하고 영원히 죽지않고 살 것처럼 타인을 유린말살하고라도 살려고 하는 자들과 한 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 철칙입니다.
죽음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장소도 사정도 예고도 없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뒤에는 무서운 천주님이 공정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저는 미처 몰랐읍니다 .
죽으면 그것으로 인생은 끝나는 것으로 알았지만, 죽음이란 인생이라는 단잠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교차하는 것이라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읍니다.
제가 현재 죽음에 직면해 있으면서 절실히 느긴 일이지만 얼마전까지도 神을 극구 부정해 오던 것이 저도 모르게 진리를 찾게되니 인간은 간사한 반면 종교적 동물임에 틀림없읍니다. 저도 일찌기 천주님을 알았다면 현시점에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새삼 느껴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죽음을 등에지고 있으면서 어디다 부리고 쉬어야 할 것인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천국일 것입니다.
입으로만 믿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입술의 기교와 가장된 신자, 사치심에서 오는 현대인의 기형적인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포근하고 평화스런 요람의 품에 안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는 생명보다도 죄가 무섭읍니다. 죄가 무섭다는 것은 천주님이 세계를 어렴풋이 느낀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읍니다.
사람들은 곶잘 자기가 행복되길 원하는 것 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여지길 애습니다. 그런 허영심 때문에 자기의 진짜 행복을 잃어 버립니다.
저는 우리 대부님(고중렬 「분도」씨)을 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직무 외에도 추우나 더우나 고달픔을 모르시고 찢겨지고 상처난 어린 양들의 영혼을 위해 동분서주 하시며 양식을 먹여주시고 피와 수난으로 채우신 얄팍한 봉급에서 인정과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영원한 진리를 기재한 시보를 읽게끔 해 주시는 성스러운 고난의 성심을 느낄 때, 더욱 짙어지는 참회의 눈물은 어쩔 수 없는 저희들의 순수한 선물입니다.
언젠가는 형집행이 있은뒤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저에게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읍니다. 그 은공을 우리로서는 보답할 길 없고 천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리라 믿지만 정말 우리는 가톨릭을 허례없이 올바르게 인식하고 천주님 앞에 떳떳이 돌아갈 수 있는 만반이 준비를 항상 하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밝은 세상에 계신 여러분! 저로선 이 세속에서 보속을 다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안타깝읍니다.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봉헌할 수 있는 거란 소극적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천국을 위한 넓은 터전에서 해지기전에 마음껏 힘껏 닦으셔야 될 것입니다. (서울교도소에서)
김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