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건 옛말이다. 적어도 큰 도시생활에 있어선, 전화는 文化財가 아니라 이미 生活財이다. 일본 동경같은 큰 도시에 가면 더욱 그런까닭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몇년전 일본여행때 아침 일찍 동경탑에 올라가 봤다. 「타워」 위에서 보면 동경의 거리도 역시 잘못돼 있다는 걸 전문가 아닌 사람들도 알 수 있게 된다. 동서남북으로 갈린 도로가 고루지 못하고 우불구불한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동차가 꽉 거리를 메운다. 「러시아워」다. 전혀 빠져나가지 못하는 자동차는 그자리에서 늦장을 부린다.
그러기에 동경서는 「러시아워」때는 대개 지하철을 이용한다. 꼭 면담이 필요치 않을땐 電話를 이용하는게 가장 빠르고 서로 편리하다.
우리가 외국여행할 때 가장 요긴한 건 전화번호를 「메모」해두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일본 등 큰 나라는 대개 장거리번화도 자동식이다. 전화국을 거칠 필요없이 앉은 자리에서 끝에서 끝까지 금방 연결된다. 마치 시내전화를 거는 것과 꼭같다.
고속도로니 뭐니 교통망이 거미줄처럼 얽혔지만 도로수용량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십분동안 달릴때 전화는 전시내 요소요소를 몇십바퀴 돌게 된다.
경제적으로 따져도 전화료는 매우 싼편이다. 가령 동대문서 영등포까지 뻐스로 가는데 십원이면 그 절반으로 전화는 통한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로울 뿐 아니라 교통완화의 한 구탱이도 맡고 있는 셈이된다.
몇달전 나도 전화를 놨다. 놓기 전엔 그렇게까지 實感은 못했었다. 전화를 통해 對人關係가 엉뚱하게 立體的이 된걸 느끼고 電話야 말로 서울에서도 生活必須財임을 다시 느꼈다.
가만이 집에서 쉬며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려봤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책임을 알았다. 전화가 있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전화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도 전화부는 필요할 것 같았다.
年鑑版보다도 큰 전화번호부는 6백 「페이지」가 훨씬 넘는다. 가입자들에겐 무료로 돌아오지만 미가입자가 구하려면 몇백원 돈이면 되는 것 같다. 전화번호부 한권만 있으면 그런대로 훌륭한 人名錄이 될 수도 있다. 立法, 司法, 行政의 각 부를 비롯 중요기관을 앉은 자리에서 찾아낼 수도 있다.
얼마전 외국을 다녀온 어떤 도서관장과 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다. 그가 미국 「뉴욕」 도서관엔가 갔을때 놀란건 도서관마다 전화부가 비치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미국국내 전화번호부 뿐만 아니라 전세계 중요도시의 전화번호부가 질서졍연히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화번호부만도 몇천권이 될른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시민들로부터 도서관에 전화번호를 물어오는 일이 헤아릴 수 없다 한다. 아마 우리나라선 이런 문의를 도서관에 하지도 않겠지만, 도서관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도서관 하면 무슨 연구나 특별한걸 하는 곳으로 아는게 상식이다. 도서관이 날마다의 생활과 얼마나 직결되어 있는가를 모르고 있다. 그래 요새는 우리나라 몇몇 도서관에서도 「서비스」에 신경을 쓰고있는 것 같다. 이전과는 달리 웬만한 참고사항을 물어도 조사해서 알려주고 있다.
절이 산중에서 거리로 내려와야 된다는 말과 비슷이 도서관이 대중의 생활속에 뿌리박게될 때 참다운 생활을 위한 도서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먼지 앉은 「엔사이크로피디어」나 原書같은 것만을 생각하기 전에 생활의 필요빈도에 적응한 도서관을 그려보아야 하지 않을까. 전화번호부도 책이다. 훌륭한 생활안내의 책이다. 번호부가 책인이상 도서관에 비치해야 된다는 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인간이 아닌 이상, 사회생활의 한 분자로서의 社會的人間인 이상 電話番號簿는 구공탄이나 쌀과 꼭같은 생활필수품이다.
대도시사람에게 있어서 전화번호부보다 더 중요한 生活便覽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들의 생활을 소통시켜 주는 좋은 책은 사실 전화기 옆에 늘 자리잡고 있다. 안경을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무지처럼 전화를 사치품으로 생각하는 것도 매일반이다. 우리들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 바로 생활주변에 자리잡고 있다는걸 잊고 있는 것 같다.
眞理도 저 산너머 수평선쪽에 있는게 아니다. 그냥 우리들의 생활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吳蘇白(言論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