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社會에서 正義感이 희박해지고 있는 까닭이 무엇이냐 라는 문제가 최근 「세미나」 같은 의견교환의 자리에서 자주 토론된다.
교육이념이 너무 實利的이다… 社會의 不正 腐敗가 어릴때부터 몸에 배어서 면역이 되었다… 인간교육이 아니라 점수교육이기 때문이다… 등등 여러가지 의견이 나오고 그 모든 의전에는 모두 일리가 있다.
2·3年전 일본의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씨가 작품 「風濤」의무대가 된 한국을 찾아왔다. 한국일보의 초청형식이어서 나도 몇번만날 기회가 있었다. 江華島등 地方을 다녀보고 와서 그는 한국의 인상을 『老人이 행복한나라』라고 集約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본 눈으로 한국만치 老人의 얼굴에 화색이 흐르는 나라가 없었다고 보았으니 한국의 노인들은 분명 노인다운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 어떤 탓에서는 봉건성이 남은 前近代的 동양의 미개국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의 말뜻은 그렇지 않았다. 서양의 어느 나라에 가도 이른바 현대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 일수록 노인의 얼굴에서 불행한 그림자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말하는 불행이란 먹을 것을 못 먹고 입을 것을 못 입은 상태가 아니라 자식손자가 줄지어 잘살고 있으나 그들 틈에 끼이지 못하고 소외되거나 양로원으로 보내졌기 때문에 생긴 외로운 老後를 뜻한다.
老人들뿐이아니다. 文明이 발달한 西歐의 夫婦中心 小家族制度下에서는 어린이도 가정부나 탁아소에 소외되게 마련이다. 이노우에씨는 그런 보기싫은 서구적 현대문명이 일본에도 흘러들어 못마땅히 여기던 차에 한국서 행복한 老人들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 家族制度의 변천에서 正義感이 희박해지는 遠因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大家族制度도 최근 모름지기 分化하고 있다. 大家族制度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不和처럼 그렇게 낡고 不合理한 制度인듯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생각하고 있는 오늘이다.
아직 양로원이나 탁아소가 많지 않아 그렇지 시설만 갖추어지면 우리나라에도 어버이와 어린자식을 남의 손에 맡기는 夫姉가 격증할 것이 틀림 없다.
正義感이라든지 倫理感같은 것은 學校교육에서보다 家庭에서 뿌리박히는 것이다. 아버지의 꿋꿋한 獨立精神은 가정생활의 흐름속에서 아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正義를 쫓고 不義를 멀리하는 정신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탁아소나 가정부 아래서 자라고 老人들은 환갑도 되기 전에 양로원이나 별채로 쫓겨나는 줄거리 없는 가정에서 어찌 代代로 흐르는 「정신」이 계승될 수 있겠는가. 경박한 서구문명 속에는 언제나 目前利害만을 쫓는 얕은 사상이 숨어있다.
正義感이 더 희박해지기전에 家族制度의 核分化를 막는 계몽이 전개되었으면 한다.
南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