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제자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성품이나 선량이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베드루다.
이 어부출신의 순박하고 성급하고 막말로 하면 좀 주책이 없는 제자는 때마다 우스광스러우리만큼 실수도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해서 예수께 핀잔도 여러번 맞는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이런 베드루의 「人間的」면에 대하여 어느때는 寬大히 받아 들이시고 어느때는 非情이라 하리만큼 冷酷이 물리치신다.
여기서 그 두가지 경우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첫째 「마테오」 福音 17장 23절부터 26절을 나대로 읽어나가면
『예수 一行이 가파르나움이라는 곳에 오셨을 때 어떤 유데아 稅吏 하나가 베드루에게 「너의 스승은 구실(여기서는 國稅가 아니라 聖전에 헌납하는 敎務金을 가리킴)을 바치지 아니하느냐」 하고 물으니 베드루는 위선 말막음으로 「받치신다」고 장담하고 나섰다. 예수께서는 그 당장은 잠잠하고 계시더니 집안으로 들어가서 먼저 말씀을 꺼내시되 「시몬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상의 임금이 누구에게서 朝貢과 賦稅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서 받느냐 혹은 일반 백성으로부터 받느냐」고 하시니 베드루 「일반백성에게서 받나이다」 대답하니 예수께서 「그러면 이금의 아들은(자기는) 상관 없고나」 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저들(유데아人)로 하여금 怪異하게 여기지 아니키 위하여 너 바다에 가서 낙시를 던져 제일먼저 물려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그 아가리를 벌리면 銀錢을 얻으리니 그돈으로 나와 그대들의 구실을 물어주라』고 하시다.
여기를 보면 예수께서는 베드루가 시키지도 않은 대답을 제마음대로 해노았지만 그의 체면(?)을 감싸주시려고 조그만 異蹟까지를 베풀어주신다.
그런데 이번엔 같은 마테오 福音 16장 20절부터 23절까지를 보면 『예수께서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서 거기 長老와 律法學者와 祭司長들에게 告發을 받고 수난을 받아 죽고 3일만에 부활할 것을 비로서 제자들에게 吐破하시니 이를 들은 베드루는 조용히 예수를 따로 됩자고 끌고 나와 엿쭙기를 「주여(그런 不吉한 말씀을) 마옵소서. 당신께서 그런 일(凶한 變)은 절대 당하지 않으리다」하니 예수 베드루를 돌아보며 일으시되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네가 천주의 뜻을 맛드리지 아니하고 오직 사람의 뜻을 맛드리니 너 나를 阻害하는도다」하고 호령하신다.』
베드루의 忠告가 그의 善意와 哀情의 發露임은 물론이려니와 이것을 모르시는 예수도 아니시다. 오직 이러한 善意 속에 감초인 그 스스로도 의시가지 않는 나쁜 意志 즉 惡魔의 계획이 엿보였기 때문에 이렇듯 호되게 꾸짖으신 것이리라.
却說하고 現代는 「휴매니즘」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人間的」이란 이름아래서 얼마나 惡이 同情되고 妥協되고 默認되고 助長되고 또 跋扈하는 것일까. 「휴매니즘」이 善惡의 價値判斷을 痲痺시키고 있다면 過言일까. 여기에 「휴매니즘」의 再檢討가 필요하다.
具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