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한철은 벗고 사는 것이 제일이다. 어린아이들이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노는 것을 보면 부러워진다. 소년시대에는 예절이니 체모니 거리끼는 것이 없어서 좋다. 체면을 차리고 예절을 안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여름한철을 괴롭게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나의 아버님이나 어머님만 해도 삼복(三伏) 더위가 아무리 찌는듯해도 웃통한번을 시원이 벗지를 못했다. 인제는 부녀자가 맨발로 거리에 까지 나서고 발톱에 화장도 하지만 50년전 아니 30년전만 해도 발을 벗고 나서는 여자는 천인(賤人)의 계집 이라고 깔보았다. 아무리 더워도 부여자는 ①적삼 ②속적삼 ③허리띄 ④속속곳 ⑤바지 ⑥단속곳 ⑦치마 ⑧속버선 ⑨버선 무려 아홉가지를 몸에 걸쳐야 했다. 그야 물론 모시나 안동포 같은 가볍고 바람 잘드는 옷감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요사이 숙녀들은 아무리 꼽아도 안팎을 통틀어 네 가지이면 족하다. 전으로 치면 침의(寢衣) 정도이다. 더욱이 전에는 조금이라도 더 감추려고 애를 썼으나 인제는 어떡하면 좀더 드러내는가에 촛점을 모으고 있다.
해수욕장에 가보면, 이미 현대문화는 의상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조차 든다. 그야 문교부에서 성(性)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하기 위하여 교과서를 마련하게 된 이상 배꼽이 나오는 해수욕복쯤 가지고 이러니 저러 투덜거릴 때가 아닌성싶다.
단지 한마디 하자면 너무 외풍(外風)만 부러워하고 본을 받다가는 우습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외국인의 탄식(嘆息)이 었지만,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한국에는 모시니 황마니 안동포니 하는 여름옷감이 입고들었는데 그 옷을 입은 이는 __나기 어려우니 웬일입니까?』
잘 찾으면 아주없는 것은 아니다. 세모시를 다루어 적삼 치마를 입고 나서면 맑은 바람이 감돈다. 게다가 연옥색 혹은 엷은 치자빛이 우러나듯이 물들어있으면 보는 이의 마음까지 개운해진다. 구태여 아홉가지를 다 입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사람만이 입을 수 있고 또 그것을 자랑함 즉한 여름옷 여름옷감을 한갓 고물(古物)같이 걷어 차버리지 말고 그것을 아끼는 한국의 현대여성이란 생각을 가지고 한국의 현대여성의 한 자랑거리를 삼자는 것이다.
명동거리에는 양장점은 숱하건만 한복을 지어주는 집은 없다. 그렇다고 아주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 뒷골목으로 밀려나서 겨우겨우 지내간다. 무언가 한 가지 잃어버린 것 같은 서운함을 느낀다.
李瑞求(劇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