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67년 6월 30일 현재로 집계발표한 교세 통계표를 보면 66년 같은 날자 이후로 일년간 우리는 25,516명의 교우를 더 맞이하여 현재 교우 총수는 73만1,628명으로 되어있다. 증가율로 따지면 3.5%가 된다. 이 증가율은 58년의 19.9%를 정점으로 해마다 줄어져 10년 이래 금년이 최저율을 보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총인구와 비교해보면 2.5%로 인구 100명에 두 사람 반이 영세한 교우라는 설명이 된다. 인구와이 비율은 56년도의 1.1%에서 시작하여 해마다 상승 작년도의 2.42%에서 금년은 0.08%가 늘어난 2.50%가 된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우리가 지난 일년동안에 다소나마 전교를 한 것 같이 보이나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 우리나라 총인구는 현재 2천9백66만으로 그 증가율을 보면 56년에 3.6%를 최고로 해마다 저하일로를 걷다가 65년에 2.4, 66년에 1.8, 그리고 금년은 1.7%로 각각 급속히 저하되어 있다. 66년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마지막해로 정부가 인구조절정책에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소위 1.8%의 해에 해당한다. 67년도의 인구대 신자비율이 2.5%가 된 것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전교업적의 결과라고 하기보다도 인구증가율 억제의 결과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한심한 숫자는 냉담자의 수다. 현재 냉담자는 6만6백32명으로 교우수에 비하면 8.29%, 즉 교우 백명중 8명이 냉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비율은 61년도의 4.04%에서 해마다 그 숫자가 늘어 66년이 6.33%. 금년은 급속도로 8.29%의 숫자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교우자녀의 영세수는 작년보다 약 1,400명 증가했고 대인영세자는 작년도다 약 5천명이 준 33,856명이다. 그런데 냉담자는 현재 총6만명이 넘는 숫자를 나타내고 있다.
다시 연도별로 통계숫자를 살펴보면 교우수의 증가율이 가장 높은 때는 57년 58년 59년도로 자유당 말기에 교회가 가장 심한 박해 속에 있던 58년도가 「피크」를 보이고 있다. 신자 증가율이 가장 낮고 그와 동시에 냉담자의수가 가장 높은 56년도에서 57은 정부가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해로 경제성장을 자랑하고 국민들은 생활의 유족과 태평 「무드」에 젖기 시작한 해임을 우리는 여기서 상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교세표를 훑어보면 성직자의 수를 위시하여 교회사업, 시설면에 많은 발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병원 경영에서는 괄목상대할만한 숫자의 상승이다. 본당 수의 증가도 20개로 늘어났고 통계표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성당건평의 많은 증가는 숫자를 따지지 않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아무리 증가하고 학대된다고 해도 이것이 곧 교세가 될 수 없다. 교세는 수계하는 교우의 수가 증가되어야 한다. 현 상태로 간다면 교우의 증가율은 앞으로 더욱 저하되어 마침내는 교우의 전체 수 자체가 줄어질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마침 전교주일이다. 이날 우리는 미사중에 본당신부의 강권에 못이겨 몇푼의 연보금을 거둬 「로마」로 보냄으로써 만족할 것인가. 우리는 앞서 열거한 이 엄연한 숫자를 앞에 놓고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이 전교활동에 새로운 각오가 있어야 하겠다. 우리는 전교지방이라는 이름을 감수(甘受)하고 살아왔다. 소위 종교적 선진국에 의존하고 살아왔다. 종교적 저개발적 미개국으로 타락의 길을 걷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치명복자의 후예임을 자랑하고 고해성사 잘 보고, 영성체 많이 하는 교우로 자처하며 도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고애나 재영성체의 숫자가 작년보다 늘어난 것이 없다. 숫적으로 열세에 있는 한국교회는 질적으로도 타락하고 있다. 교회의 발전이란 이름 아래 외형적인 것에 골몰한 나머지 우리는 대중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생활이 형제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대와 더불어 변천하는 사회에 전교를 위하여 우리는 어떤 연구를 했던가. 어떤 연구기관을 가졌으며 어떤 새로운 방법과 활동을 강구했던가. 노력과 돈을 들여 만든 교세통계표로 무엇을 연구했는가. 그 양식도 구태의연하다. 과연 우리의 생활이 형제애에 가득찬 생활이었던가. 사회적응을 위하여 무엇을 했으며 전교방법에 있어서는 「빠리외방전교회」시대에서 얼마나 진보했으며 무슨 새로운 것이 이 땅에 시도되었던가. 10년전의 전교방식이나 지금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구태의연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 10년전인 58년에 신자증가율이 가장 높았다고 함은 전술한 바와 같거니와 이 시기는 우리가 물질 생활이 지금보다 적더도 더 나을 것이 없었다. 교우들의 생활이 그러했고 성직자와 수도자의 생활이 그러했다.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대단히 불안했다. 그때 사람들은 그래도 천주님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교우들의 생활도 달라지고 성직자의 사실에서 냉장고나 TV를 그 문전에서 자가용차를 찾아보기 그렇게 힘들지 않다. 지난 10년동안 우리는 우리의 정력을 어디에다 쏟았단 말인가. 경제성장만으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우리가 촉구하는 길은 조화된 인간발전에 있는 것이다. 전교문제가 나오면 곧 돈이 없어서라고 책임을 전가하기 일쑤다. 「세삼」의 것으로 어찌 천주의 백성을 얻으려 하는가. 교세저하이 이 현실을 보고 우리 다같이 깊은 반성과 새로운 각오가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