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25전에 신병의 요양으로 馬山서 한1년 지낸일이 있다. 그때 본당시부님이 얼마전에 세상을 떠나신 「빠리」외방전교회 睦 신부님이셨다. 이 신부님의 聖德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지만 나같은 뜨내기 시자에게도 그분의 面目을 곧 알아 뵐 수 있었다.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그분은 벌써 그때도 老齡으로 주일 미사중 강론을 하실때는 제대에 걸상을 가져다 놓고 앉아서 말씀하시는데 때마다 사추리를 안가린 어린애들이 벌벌 기여올라가 구두와 장백이 끝에 매달려도 당신은 무심히 이야기를 계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신부님의 강론은 집안 할아버지의 타이르는 말씀처럼 논리적으로 앞뒤도 맞지 않고 결코 웅변도 아니었지만 흰수염을 느린 그 맑은 모습과 함께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환하게 하였다.
얘기는 바뀌지만 나는 年前 교회경영 신문사를 R신부님이 맡았을 때 잠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아침마다의 幹部會議가 때때로 正午 삼종때까지 계속되어도 R신부는 회의를 계속하시는데 그중 교우 간부 하나는 언제나 보라는듯이 일어나 삼종기구를 그야말로 경건하게 바친는 것이다. 내가 이를 민망하게 여겨서 한번은 우리…교우 간부들의 삼종때 행동 통일을 제안했더니 R신부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시며
『그 10여명중에는 우리 교우보다 미신자가 많은데 우리들이 기어코 일어나 삼종을 바친다면 그 미산학자들이 얼마나 무안하고 가깝할 것이오. 오히려 그 열성을 가지고 마음속으로 하든가 회의가 끝나고 할 일이지! 기구란 어디 남보라고 하는거요』하신다.
또 나는 분도회수도회 M 신부의 이런 일화도 알고 있다. 그는 考古學으로 독일학계에서도 저명한 분이었으나 저 豆滿江邊 鷄林이라는 광산촌에서 일생을 마치셨다. 거기에 어떤때 신학교 평신자 교수 한분이 찾아갔다. 두분은 반가운 김에 저녁식사때 飯酒 한잔들을 하셨다.
이것이 좀 過했다. 때마침 무슨 聖月때여서 저녁 강복식이 있었다. 손은 주인 신부께 근심스레 말했다. 『저도 저려니와 신부님께서 저렇듯 얼굴이 붉으셔서야 어떻게 가복을 드리시죠?』
그런데 M 신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천주께서는 白인종도 黑인종도 黃인종도 차별없이 사랑하십니다. 내가 비록 紅인종 되었다 한들 천주께서 꾸중 낳아실 것입니다.』
두분은 呵呵大笑하고 성당으로 향했다.
이제까지 신부님들의 「유니크」한 일화들을 적어온 나도 물론 嚴威하신 천주대전에서 소란을 피우는 어린애들 머리에 꿀밤을 주는 신부나 삼종때만 되면 언때 어느 장소에서든지 기구를 바바친 열심교우를 배척하려하은 추도호 아니요, 더우기나 신부님이 술이 취해 성당에 드시기를 장려하려함은 결코 아니다. 오직 牧者들중에는 저런분들도 게서 우리에게 예수께서 주장하신 인간에 향한 사랑을 홍그럽게 가르치신다는 것을 알릴 뿐이다.
具常(詩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