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육을 앞에 두고 냄새 나는 우리 속에서 죽을 먹는 豚君을 연상하는 사람이 없듯이 개장도 맛들이면 고기 이전의 상태를 연상하지 않게 된다. 개고기 먹는 人種을 상상도 못한 어떤 佛蘭西아가씨가 사랑하는 韓國人 남편으로부터 『우리 고향서는 가장 더울때 개를 잡아 먹는다』는 鄕愁어린情談을 듣고 놀랐다.
『당신도 먹었어요?』
『나도 먹었지요』
그날로 아가씨는 한국청년을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그렇게 다정스럽게 제공하던 입술을 닦으며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 아가씨는 愛犬하는 습성에서 그렇게 놀란 것인지 모르나 한국의 실정을 더 僞惡的으로 표현했다면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개장을 즐기는 사람치고 黃犬을 꼽지 않는 사람이 없다. 黃犬이란 흔히 農家에서 애들의 기저귀를 핥게 하는 잡종이다. 그런 개의 식성뿐 아니라 개를 먹는 것부터가 非衛生的이라해서 故이승만 대통령은 못먹게 했다. 그러나 庶民層에서 高官까지의 많은 愛食家는 급기야 補身泌이라는 美名으로 팔게 했다. 아까 僞惡的 표현이라 했는데 그것은 愛犬家중에 愛食家가 많다는 說이다. 그들은 좋은 犬族의 血統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黃犬따위의 難種을 먹어버려야 한다는 逆說을 내세우곤 하는 것이다.
佛蘭西神父들이 개장을 즐긴다는 이야기는 서울大學의 柳洪烈 교수에게서 처음 들었다. 6·7年前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스터·에그」(復活節 선물용 계란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더니 「이스터·독」이란 글을 주셨다.
박해가 심할때 中國에서 義州를 거쳐 들어온 佛蘭西神父는 상립·喪服차림으로 산간벽지의 신자를 찾아다녀야 했다. 행인의 눈은 피할 수 있었으나 개들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捕卒보다 두려운 것이 개였다.
또한 신자쪽에서 보면 귀한 손님에 대접할 육식으로는 개밖에 없었다. 이두가지 공통된 이해관계가 神父들에게 엄청난 口味를 갖게 했다. 그것은 傳統化했다. 한국天主敎史에서 개장을 뗄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主敎館에서 이따금씩 개장파티가 열린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눈물겨운 歷史를 지닌 食性이라하겠다. 한국청년을 버리고 갔다는 佛蘭西아가씨가 이런 佛蘭西神父들의 愛食史까지를 이야기 들었다면 설마 도망가기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伏철을 맞아 해본다.
南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