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퍽으나 깊어졌다. 흔히들 가을은 思索의 절기요 따라서 詩人의 계절이라고 한다. 어디선지 릴케가 읊었듯이 『잎이 진다… 멀리선 듯 잎이 진다.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이 손이 떨어진다. …모두가 떨어』지듯 어느 산중의 계곡에 황금빛 낙엽이 뚝뚝 떨어져 쌓일 것이다. 조락의 계절이 오면 자연은 形象으로 思索함으로써 우리 또한 부질없이 뒤쫓긴 현실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를 돌아보며 人生을 사색하고 죽음을 음미하게 될 것이다. ▲누가 『자연으로 돌아가라』 했지만 실상 이런 無爲한 自然 가운데서 사람은 더 무거운 思索의 추를 달고 理性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나는 손과 발과 머리 없는 한 인간을 상상할 수 가 있어도 사고 없는 人間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돌과 금수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실상 사람은 나면서부터 인간의 本能的 原理인 自己愛로부터 출발하여 끝내 여기서 부터 벗어날 수 없는 본능적 동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정신적 改發의 척도는 그가 얼마나 自己愛的 本能에서 벗어나고 제어할 수 있는 理性的 능력이 있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떤 야만지에서 보다 정신미개인은 기계문명이 발달된 번화하고 화려한 현대도시 속에 훨씬 더 많이 서식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이웃을 향하는 진정한 인간적이고 利他的인 사고 능력이 극도로 마비되어 자기행복, 안일만 추구하는 일부 「에고이스트」들이다. 개인의 자유 권리가 확대되고 주장되는 현대에서 누구말처럼 개인의 행복추구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극도로 기계화되고 복잡화된 사회속에서 인간다운 理想을 잃고 기껏 자신을 가까스로 유지하려는 소시민적 생활관이나, 끝없는 피상적 행복 · 성공을 추구하기에 혈안이 된 것 같다. 이런 비뚤어진 인생관의 결과 일어나는 허다한 사회폐습의 하나가 이즘 물의를 일으키는 어린이 과외수업이다. 어린이의 장래 행복을 위한다는 것이 그들을 영육으로 생지옥에 몰아 넣고 끝내는 한 어린이의 참살의 비극 앞에서도 정을 못다시는 여자들의 허영을 넘어뜨릴 理性은 없는 것일까. 그래도 남아있는 한 자모의 理性은 이렇게 말했다. 『자녀에게 성공을 바라기보다 인류에 대한 봉사를 바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