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放과 6·25를 통하여 天主敎라는 宗敎가 우리나라에 비교적 널리 알려진 것만은 사실이며, 그 덕택으로 오늘날 百萬을 바라보는 敎勢를 자랑하게 된 것도 그 增加의 비율로 보아 世界의 關心事가 아닐 수 없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사실은 특히 이웃 日本과 比較해 볼 때에 더욱 현저하다.
解放 당시의 日本의 敎勢가 大略 12萬이었고, 우리나라 南韓敎區 所屬敎友 數(따라서 반드시 38度 以南의 居住者만은 아니다)가 역시 大略 12萬이었다. 그런데 그후에 우리나라보다 엄청나게 많은 人力과 金力을 投下한 日本이 오늘날 35萬으로 約3倍의 증가를 보인데 대하여, 우리는 훨씬 적은 사람과 돈을 가지고도 그 6倍가 넘는 成果를 걷우었으니 참으로 그 成長率로 보아서야 눈부신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동시에 최근의 統計를 보면 그 城將率도 어느 程度 頂点을 넘은 것 같고, 布敎를 위한 黃金의 機會도 우리가 완전히 포착하지 못한채 넘겨버리지나 않나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리고 우리의 數字에만 현혹되어서, 人口增加에 따른 敎友比率이 별로 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눈감은채, 너무 우리는 安逸한 태세에 놓여있지 않나 하는 反省도 나온다.
布敎의 機會란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무엇보다도 重視해야 하겠다. 구제품 傳敎와 연도 傳敎의 때도 이미 지난 것을 알아야겠다. 그리고 大部分의 農村에 대해서 天主敎는 아직 宣敎되지 않은 商品인줄로 알아야겠다. 敎란 商品을 파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 우선 물건이 알여지게 宣傳되어야 하며, 한번 알려지면 그 品質이 信用있게 보장되어야 한다.
여기에 진실로 救靈의 經營學이 요구되는 것이다.
日本의 例를 볼 때에 天主敎라는 商品을 宣傳하기에 무척 힘을 들이나 작 먹히지가 않는다. 最近 10年間 日本의 新興宗敎 「創價學會」는 日貨 年4億圓씩을 들여서 千萬名의 敎勢를 이룩햇는데 天主敎는 年百億圓을 들여도 그모양이니 布敎의 機會란 그리 쉽게 포착되는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회는 정말 하느님의 특별한 안배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黃金의 機會를 놓져가고 있다. 서울 市內에 새 本堂이 많이 섰는데 가끔 「택시」를 타고 가다가 물어보면 그 管內의 가까운 藥局에서도 그 位置를 모르는 수가 있다. 심지어는 洞會事務室을 갔는데도 엉뚱한 聖潔敎會를 대주는 例도 있었다.
동내에 聖堂이 있어도 동내 사람들에게 關心거리가 되지 않고 司祭가 司祭館에 있어도 司牧에만 바쁘다는 理由로 새로운 씨를 뿌리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으면 救靈의 經營은 엉망이 될 수 밖에 없다. 布敎란 敎會와 未信者와의 접촉의 場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접촉이 매력있는 것이 되어야 사람들이 끌려들어올 것이다. 이 場과 매력을 마련하기 위하여 平信徒使徒職도 중요하지만 司祭의 使徒職은 더 重要하다.
고기를 잡는데도 戰術戰略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람을 낚시질하는 일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별로 힘안들이고 商品宣傳은 해놓았는데 진짜 판매기술이 모자라서 매상을 올리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몹시 큰 것이다.
그리고 이 기술부족은 누가 저질렀던 간에 平信徒보다도 司祭에게 그 탓이 더 돌아가기 마련이다. 司牧도 바쁘나, 布敎의 機會를 놓치는 것은 정말 안타깝고 아까운 일이다. 제발 모두가 다시 한번 救靈의 經營學에 눈떠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래서 적어도 자기 管內에 있는 모든 상점에서는 天主敎會가 어디에 있다는 것쯤은 알도록 해야할 責任이 司祭에 있다고 느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地上課業인 福音을 傳하고 그리스도를 證據하는데 얼마만큼 힘을 들여 戰術 · 戰略을 硏究했던가? 우리 個個人의 熱誠을 어느 程度 인정한다 할지라도 兄弟愛와 共同體에 立脚한 努力은 거의 全無狀態가 아닌가? 原始的이며 非科學的 布敎態勢로는 希望이나 展望이란 殆無할 것이다. 指導力의 發揮와 이에 積極參與만이 이 黃金期를 持續시킬 것이며 우리의 使命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每年 敎會出版物을 통해 斷片的으로 敎勢成長을 보아왓다. 그러나 이 統計自體가 意慾이 없는 舊態依然한 消極的인 것이며 非效用的이다.
그것조차도 치례삼아 겨우 몇 사람이 한번 만들어 봤지, 實質的으로는 完全無視 혹은 無關心의 對象일 뿐이다. 여기서도 覺醒과 刷新이 緊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