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해가 시작되는 그 첫날이다. 찬란히 그리고 힘차게 떠오르는 아침 해와 더불어 새로운 또 하나의 해가 밝아온 것이다.
어제, 바로 어제 우리는 저물어 가는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작별을 고했었다. 이제는 결코 되돌아 오지 않을, 가는 해이 마지막 날을 못내 아쉬워 했었다.
하나의 해가 지나가고 그리고 또 하나의 해가 시작되는 이 순간, 우리는 「시간」(時間)에 대해서 묻게된다. 하나의 끝과 그리고 또하나의 시작이 서로 교차하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시간」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우리는 시간이라 하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시간에 있어서 「끝」이란 무엇이며 또 그리고 「시작」이란 무엇인가.
■ 현재만이 生生한 時間
물론 우리는 시간을 잘 안다. 시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시간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에게 머물다가 또다시 우리로부터 떠나간다. 다가오는 시간을 우리는 「미래」(未來)라 하고, 떠나가는 시간을 우리는 「과거」(過去)라 한다. 그리고 머무는 시간을 우리는 「현재」(現在)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간은 머무는 시간뿐이다. 즉 현재 뿐이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시간인 미래는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했고, 떠나가는 시간인 과거는 이미 우리로부터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다라서 현재 그것만이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우리에게 머물어 있는 시간과 머물어 있을 시간을 달력으로 계산하고 시계로 잰다.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이러한 시간을 우리는 흔히 우리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소유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문에 우리는 흔히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 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간을 낸다」 또는 「시간을 번다」고 말한다.
■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다
먼 옛날에 어떤 현인은 시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도 묻는 이가 없으면 나는 그것을 안다. 그러나 붇는 이가 잇어서 내가 그것을 설명해 주려 하면, 나는 그것을 모른다』 시간, 그것은 우리가 그에 대하여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수수께끼가 되어간다는 말이다.
시간은 온다. 그리고 시간은 간다. 이때 시간은 우리에게 물어본 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온다. 그리고 우리에게서 허락을 받은 후에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훌쩍 떠나버린다. 우리는 오는 시간이 좀더 빨리 오도록 하는데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리고 떠나는 시간을 좀더 오래 머물게 할 아무런 힘도 없다.
■ 인간에게 허용됐을 뿐
인간이 시간을 그 손에 쥐고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이 시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 그것이 인간에게 「허용되어」 있는 것이다.
「선사되어」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이란, 우리 인간이 그속에서 존재하고 행동할 수 있기 위해 주어져 있는 하나의 「선물」(膳物)이다.
그리고 이 선물은 귀한 것이다. 그리고 값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제나 일회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주어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사와 축하를 서로 주고 받는다.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안녕히 주무셨읍니까?』하고 서로 인사한다. 그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마다 『새해를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며 인사말을 서로 나눈다.
그리고 또한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생일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축하해 준다.
■ 인사말에도 「선물」의 뜻 내포
우리가 서로 주고 받는 이러한 인사말 속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즉 시간이란 우리에게 허용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인사말 속에 암시되어 있다. 아침인사 속에는 「새로운 아침」 그것이 당신에게 또 한번 허용되고 선사되었다는 하나의 선언이 감추어져 있다. 새해인사 속에는 이해가 또다시 당신에게 허용되고 선사되었다는 선언이 감추어져 있다. 그리하여 새해인사는 그 허영되고 선사된 선물에 대한 축하이다. 생일축하 역시 마친가지다.
■ 신비로운 時間
오늘은 한 해가 시작되는 그 첫날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제 저물어가는 해의 마지막 날과 작별을 고했었다.
하나의 해가 지나가고 또 하나의 해가 시작되는 이 순간에 우리는 시간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의 「끝」과 하나의 「시작」이 서로 교차하는 현상을 눈앞에 두고서 시간의 「끝」과 「시작」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우선 우리는 하나의 「엄숙한 진리」를 곧 알아 차리게 된다. 즉 시간에 있어서 하나의 「시작」에는 반드시 하나의 「끝」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이것은 하나의 철칙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의 신비」를 먼발치에서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즉 하나의 「끝」은 그 끝의 마지막 구비를 돌고나면 거기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동터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묵은 해의 끝, 그것의 마지막 구비를 돌고 난 바로 그 곳에서, 새로운 또 하나의 해가 동터 오듯이…
정달용(神父 · 요셉 · 광주가톨릭대학 교수)